문 님의 글을 읽고...
많은 청년부가 그렇듯 1999년을 코앞에 둔 주안장로교회 청년부도 만성적인 인력부족 문제로 고심하고 있었다. 보수화되고 고령화되어 가는 교회의 특징은 막상 고등부까지는 아이들이 바글바글 하다가도 머리에 생각이 좀 들어차는 시기만 되면 죄 제 길을 찾아 떠나거나 누구의 간섭도 싫어하는 회색인의 자리에 서서 꼼짝 않으려 하는 청년들이 태반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해진 숫자의 임원을 메꾸기 위해 비교적 건실하나 잘 나서지를 않는 아이들을 설득해 부장과 차장, 조장, 부조장의 자리에 세우느라 지도자단과 회장단은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그들은 뒤늦게서야 성가대장의 자리가 공석으로 남겨진 것을 깨달았다. 원래 성가대장이라는 위치는 지휘를 겸하고 성가연습을 총지휘하는 터라 전문지식이 필수적인 자리였으므로 그냥 열심인 아이 하나 아무나 갖다 세울 수가 없었다. 그간에는 으레히 음악교육과를 다니는 청년이 명맥을 이어왔지만 그해에는 유독 세울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에 성가대원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세우기로 방침을 세웠는데, 새해가 임박해 뚜껑을 열어보니 영미 누나였다. 낙점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지자 반응은 한결같았다.
"뜨아......"
당시
홀스크였던 나는 우리 청년부의 평균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런 내 눈에 비친 영미 누나는 대강이 이러하였다. 꽤 놀았거나 놀 줄 알고, 화장은 늘 갓 쥐를 잡아먹다 도착한 듯 하였으며, 성격은 털털함이 지나친 나머지 일체의 책임감으로부터 넌더리를 내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악보 위에 콩나물 대가리 비슷한 것이 그려져 있구나....하는 것 외에는 음악이나 지휘에 관한 지식이 전무하였다.
"주님께서 영미 자매에게 능력을 주시길 기도합시다."
능력도 능력 나름이지.... 목사님은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그리 말씀하셨으나 소식을 접한 회장단 및 부장단은 콤포지션B 폭약 1Kg을 가슴에 안은 심정이었다.
이윽과 새해가 되어 우리의 새 성가대장과 그의 성가대가 첫 선을 보이는 순간이 왔다. 줄지어 들어와 성가대석에 자리잡는 그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감돌았고, 특히 성가대장 영미 누나의 얼굴은 거의 넋이 나간듯 했다.
사도신경을 외고 기도를 하고, 성경말씀을 봉독한 후 사회자는 운명의 멘트를 날렸다.
"성가대의 찬양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평소 그리 잘 웃던 영미 누나는 약간의 미소라도 띨듯 싶었음에도 전혀 웃지를 않았다. 아니, 웃지를 못했다. 숙제를 하나도 해오지 않은 아이가 앞줄부터 숙제검사를 하고 있는 무서운 담임 선생님을 쳐다보는 것처럼, 영미 누나는 눈빛을 한 자리에 고정시키질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지휘봉을 들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최악이었다!!!
세상에.... 세상에.... 지휘봉은 3/4박자인지 4/4인지 아니면 6/8박자인지를 도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무렇게나 허공을 휘저었고, 성가대원들은 성가대원대로 음정, 박자, 화음 어느 하나랄 것 없이 제각각 따로 놀았다. 세상에 그런 끔찍한 성가, 그런 참담한 성가대는 태어나고 처음이었다. 영화관이었다면 여기저기서 팝콘이 날아오고 콜라병이 난무했으리라. 그렇게 어이없이 성가대로부터 테러를 당한 수백명의 청년성도들은 심리적 패닉 상태에 빠진 듯 하였다. 영미 누나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마 그날 집에 가서 많이 울었을 것이다.
예배가 끝난 후, 나와
덩열군은
"그래... 현실은 영화같지가 않지... 혹시나 하고 기대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인력으로 안 되는 거였어. 주님께서도 이 상황에서 성가대에 능력을 주시는 건 불가능할 거야." 하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당장 다음 주는 어렵겠지만, 조만간에 성가대장의 교체가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다음 주 예배시간.
아무리 끔찍한들 예배시간에 성가대는 있어야 했다. 그들은 성가대석에 올랐고 성가대의 찬양 시간은 돌아왔다. 지난 주, 예상치 못한 습격을 당했던 청년들은 뼈아픈 교훈을 얻었기에 한 마음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못 할 수도 있는 거야. 너무 충격 받지 말자. 설마 지난 주만이야 하겠어?" 그 방법만이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길이었을 것이다.
성가대장 영미 누나가 지휘봉을 들었고, 마침내 찬양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최고였다!!!
세상에.... 세상에.... 그 누가 저들이 바로 지난 주 그 최악의 성가대장과 최악의 성가대원이란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 나는 내 눈과 내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어떻게 저렇게 달라질 수가 있느냔 말이다. 여느 성가대만큼은 수준을 맞췄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전 기수의 음악교육과나 실용음악과 출신의 능숙하고 유려한 성가대장이 이끌었던 시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빼어났던 것이다. 평균 솜씨의 찬양을 넘어, 듣는 청중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킬 정도였다.
성가대의 찬양이 끝나자, 설교를 위해 강대상 앞으로 나온 목사님은 당신부터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면서 청년들에게 박수를 부탁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 '시스터 액트'를 보는 듯 하였으며,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그런 놀라운 감동의 경험은 아마 다시 없을 것이다.
그후로도 성가대는 종래 성가대들은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실험과 파격적인 연출로 모든 성도들의 이목을 휘어잡았고 열렬한 인기를 받음과 함께 예배를 위해 120% 소임을 다하였다. 나중에 영미 누나와 함께 자리를 할 때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비결을 물었지만, 누나는 늘
"능력이 안되었기에 더 많이 연습했던 것 뿐야"라며 미소 짓기만 했다.
짧지만 근사했던 그날의 기억...... 정말 능력을 주셨던 걸까? :)
명 오늘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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