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동정의 감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건 그 두 가지가 구분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다. 자신의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하는 사람은 이미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결국 사랑이 아니라 동정이었음을 인정하기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둘을 혼동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동정이었음을 깨달았기에 거짓 사랑을 거둘 것인가, 아니면 동정임을 알면서도 사랑해야 하기에 끝까지 동정할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우리의 알량한 도덕관념이 거기에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다. 선한 것이 무엇이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인식할 수 있는 힘이 사람에게 주어져 있다. 자신을 희생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을 제공하는 것, 가슴에 구멍이 난 사람에게 기꺼이 빈 자리를 채워 주는 것, 그런 것들을 칭찬하고 박수를 보낸다. 문제는 그것이 내게 현실로 다가올 때 시작된다. 그저 장식이 아니라, 그저 견학이 아니라, 그저 잠시 지나가는 아름다운 예화집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내 것을 희생해 전적으로 썩어지고 내 존재를 부인하면서까지 그이를 위한 한 톨의 씨앗이 되는 것은 박수 몇 번 쳐주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때론 사랑하기에 그리 할 수 있다. 아니, 사랑한다면 돌이켜 질문할 필요조차 없다. 선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상하면서 인정해온 내가, 이제는 그것을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한 동력, 즉 '사랑'으로 모든 것을 풀이하고 거기에 기대고 싶지만, 결국엔 동정과 불순한 몇몇 감정이 전부였음이 드러났을 때, 쉽지 않은 질문은 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츠네오는 사랑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아니었음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어린아이같이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는 너무나 평범해져 버린 우리 모두의 졸렬함이 담겨있다. 그게 현실이다. 동정을 압도하는 사랑을 갖기 위해서조차도 자격이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런 현실의 상징인 츠네오를 조제는 호랑이처럼 두려워했고, 호랑이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물고기처럼 가련해했다.
영화 '오아시스'에서 종두(설경구)는 공주(문소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공주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아끼고 사랑한다. 사랑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디 그것이 동정을 이겨낸 사랑이던가? '오아시스'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정반대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오아시스'는 장애를 극복한 사랑이 아니라 두 장애인의 사랑에 대한 서글픈 소묘이기 때문이다. 몸의 장애인이었던 공주나, 마음의 장애인이었던 종두나, 이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된 주변인이었고 매한가지로 사회가 낙인찍은 장애인이었다. 그 둘의 사랑이란 그렇기에 그저 피투성이 원숭이 부부의 처연한 털골라주기에 불과하다. 관객들은 둘을 보며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한 확신은 이 사회가 감추고 있는 졸렬함에 대한 죄책감을 잊기 위한 값싼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두 장애인이 잘 살아가기만 하면 될 뿐, 우리는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와 '오아시스'는 같은 영화이면서도 전혀 다른 영화다. 하나가 우리 안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있는데 반해, 다른 하나는 이 사회의 '정상인'들의 찜찜함을 가벼운 여흥과 눈물 몇 방울로 달래준다. 그런 차이다.
덧.
순전히 영화 기술적인 면에서 본다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는 부족함이 많은 영화다. 특히 마지막 20분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음에도 개학 하루전 못다한 숙제를 해치우듯 해버린 건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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