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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논쟁에 대한 다섯 가지 질문
단식은 쉽게 말해 '밥을 먹지 않는 것'이다. 그저 밥을 안 먹는 거라면 어린 아이라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단식이라는 단어는 밥을 먹지 않는 이유, 즉 단식을 함으로써 전달하거나 관철하려고 하는 뜻과 주장이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맘에 안 드는 게 있다고 수저를 내동댕이치고 칭얼대는 아이 역시 뭔가 바라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단식은 '죽겠다'는 최악의 상황을 각오한 사람에게만이 참뜻을 갖게 된다. 종교적인 수행을 목적으로 하거나 잠시 잠깐 끼니를 거르고 지나가는 것과의 차이가 거기에 있다. 과거 정치인들이 단식을 할때면 항상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다가 정신이 조금 혼미해지면 바로 병원으로 실어가 회복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단식의 기간과 상관없이 목숨을 구할 방도를 세워둔 상태에서 하는 단식은, 그래서 온전한 의미에서의 단식이 아니다. 단식이라는 이름에 실린 위압감과 사회적 부담감을 언론을 통해 퍼뜨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뿐이다. 그들에겐 잃을 것이 없다. 죽고자 하는 각오가 없는 단식은 단지 조금 혹독한 극기훈련, 배고픔을 참는 인내심 테스트에 불과하다.
이렇게 죽음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단식에 임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고 어떤 이는 '협박'이라 부른다. 지율 스님의 단식을 가리켜 정부를 향한 철없는 '뗑깡'에 지나치 않는다고 폄하한다. 정치적 부담감을 피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비열한 방법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한들 그것이 정당성이 없으면 정부도 움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목숨을 담보한 단식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할 정도로 정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주지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목숨마저도 내놓고서라도 그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말하려 하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전향적 자세를 보이며 타협에 임했다는 것은 지율 스님의 정당성과 당위성에 대한 의지와 자신감에 대해 부담감을 느껴서이지, 절대 협박에 못이겨 일단 목숨이나 살리고 보자는 인도적인 차원의 결정이 아니란 얘기다.
예를 들어, 한 시민이 나서 단식을 선언하며 자신을 국무총리로 임명해주지 않으면 기어이 이대로 죽겠다고 한들, 정부가 거기에 귀를 기울일리가 있겠는가? 최근의 논쟁 가운데 지율 스님이 목숨을 가지고 정부를 협박한다는 문제제기가 허구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목숨이 아무리 중한들 전달하려는 뜻이나 관철하고자 하는 주장 자체가 정당성이 부족하고 당위성이 떨어진다면 그 자체로 일고의 가치가 없다. 단식을 무기로 한 모든 주장을 정부가 순순히 받아들이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생각이 순진한 거다.
100일이라는 단식기간의 신빙성을 믿을 수 없다며 지율 스님을 공박하는 근거 또한 설득력이 없다. 단식이 무슨 기네스북 도전 같은 것인 줄 착각하는가? 도전하다 규칙을 어기면 그만 두고 마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지율 스님은 단식을 선언할 때부터 '환경영향평가 재실시와 그동안의 공사 중단'만이 유일한 브레이크임을 명확히했다. 누가 뭐라든 자신에 대한 조건부 사형선고를 내려버린 것이다. 100일 동안이나 아무 것도 안 먹었다는데 말짱해 보이더라며 누리꾼들이 별 소리를 다해도, 정부가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끝내 죽어야 될 상황으로 스스로 뛰어든 것이다.
말마따나 100일이 아니라 130일이 지나고 150일을 넘기더라도 지율 스님은 이미 마지막 열쇠를 손에서 떠나 보낸 상태이기에 살아날 방도가 없었다. 정부가 '수용 불가'를 천명했다면 그야말로 기름을 이고 뻔히 보이는 죽음의 불구덩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지율 스님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길을 선택했다.
정부인들 이리저리 저울질 하며 셈을 해보지 않았겠는가? 흔히 그래왔듯이 며칠이나 보름쯤 단식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병원으로 실려가 링겔바늘을 꽂는 순서를 예상했다면 정부 스스로 협상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공사를 강행했을 것이다. 크레인 위에서 노동자가 죽어나간게 몇 명이었나? 그런 죽음에 눈 하나 까딱 않는 정부였다. 그런 정부가 무슨 도덕적인 감수성이 있다고 한 종교인의 죽음을 막아보고자 천문학적 액수가 투입된 공사를 중단하겠는가?
늑대와 소년 이야기처럼, 전혀 죽을 마음 없이 모양만 내는 단식이 우리 양심에 딱지를 덧씌운 탓일까. 지율 스님의 단식을 검증하라는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 사회의 뒤틀린 습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 기실, 그 심사의 바닥은 가책에 대한 몸부림일 것이다. 다른 이가 성취해낸 업적을 보고
'그런 거라면 나도 하겠어'라며 빈정대는 것은, 내가 먼저 하지 못한, 그리고 해낼 수 없다는 자괴감이 만들어낸 충실한 자기보호 본능이다.
(강의석 군의 단식에 쏟아졌던 비난 역시 지금의 것과 동일한 색채였음을 기억하라.)
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의 발에 부은 창녀를 보고,
"차라리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 책망했던 가룟 유다는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향유를 깨뜨리기 전에 그것의 값을 셈하고, 예수에게 받을 칭찬의 분량을 계산하는 동안, 다른 이가 기꺼이 그것을 해버린 데에 대한 부끄러움이요, 뒤틀린 시기심이다.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누리그물에서 보도되는 미담이나 화제 기사에 족족 달리는 비아냥들이 다 그런 선상에 있다.
목숨을 걸었던 한 종교인의 승리에 대해 그 반 걸음도 내딛지 못할 사람들이 구구한 말들만 쏟아낸다. 평생 신념을 위하여 목숨을 걸어보지도 못할 사람들이, 아니 목숨을 걸만한 신념 쪼가리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천만다행으로 중단된 단식 앞에서, 그런 단식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떠들어댄다. 석양을 향해 멋지게 달려가는 인디아나 존스의 끝장면만을 찍는다면 누군들 자청하지 않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한 것이, 이긴 축구경기의 재방송을 보는 것이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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