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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명료하다
진리는 명료한 법이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구구하고 궁색해진다. 그것이 사실이고 정말이라면 말이 길어질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목사들이 말하는 진리는 장황하기 이를 데 없다. 예부터 목사들이란 말 돌리기에 능수능란한 자들이었다. 진리가 무어냐고 물으면 진리를 말해주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모른다는 대답을 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열렬히 강조하고, 지식의 종합세트로 포장된 성경 구절을 몇 상자 안겨 주어 혀를 내두르게 만든 다음, "다음 손님?" 하고 손짓한다.
스스로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확신하고 남에게 전파하며 가르친다는 건 또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왜 진리가 그렇게 알 수 없고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는 게 되었나? 늘 쉽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던 예수의 천국 이야기는 간명하지 않았던가. 그가 설명하는 구원은 명료하기 그지없다.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이 사람 말 다르고 저 사람 말 다르며 그 둘이 서로 모순을 일으킨다는 점을 생각할 때, 목사들이 말을 돌리며 설명해주기 주저하는 그 '진리'를 목사 자신조차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알지만 말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교사용 참고서 몇 장 읽고 수업에 들어왔다가 학생들의 집요한 질문에 당황해 하는 실력 없는 교사처럼 말이다.
물론 그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저들끼리 입을 맞춰둔 가이드라인, 즉 교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하면 양들을 가이드라인 울타리 안에서 적절히 잘 통제하느냐 하는 것이고, 위기대처능력이 곧 말 돌리기 실력이 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경력이란 업무에 대한 경험의 축적인데, 목사들에게 있어 신학과 목회는 업무를 위한 다양한 사례연습과도 같다. 그 과정에서 부가적으로 습득하는 성경 구절들은 난감한 성도들을 퇴치하고 무마하기 위해 유용하게 사용된다.
도식화되어버린 신앙들
찬양시간,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가사를 따라부르는 친구들에게 곧잘 질문한다. 방금 그 고백, 진심이냐? 정말 그렇게 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냐? 그러면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냐? 처음에 '응, 응' 쉽게 대답하던 그들은 캐물어 가다 보면 갸우뚱하기 시작한다. 예배시간에도 마찬가지다. 심각히 고민해야 할 대목에서 너무나 간단하게 '아멘' 하는 사람들에 대한 느낌은 '경외감' 반, '의심' 반이다.
내가 의문을 갖는 것은 이것이다. 신앙이 왜 그리도 도식적인 것이 되어버렸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고객님" 하고 앵무새처럼 되뇌는 고객센터 전화상담원처럼, 우리 고백이 우리 신앙을 담아내는 게 아니라 교리가 원하는 대답만을 모범답안처럼 줄줄 뽑아낸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교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리 안에서 하나님은 박제가 되고 화석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 걸까?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하는 그 앎이 정말 앎일까? 돌이켜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렇대, 하나님이 저렇대, (그 잘난 만인제사장 시대에) 목사들이 하나씩 던져주는 사진쪼가리 몇 개를 가지고 하나님의 모습을 조합하면서 그분에 대한 우리 지식을 갈음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기억은 잃어버린 채 폴라로이드 사진 몇 장과 거기에 적어 둔 단어 몇 개로 모든 기억을 대신해 버린 영화 '메멘토'의 가련한 레너드처럼, 그 와중에 누군가 적어넣는 거짓말조차도 도리없이 우리의 참 기억이 되어버린다. 아니라고 누가 자신있게 항변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포기한 성도들에겐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아는가?
어떤 이가 당신 친구의 허물을 들어 고소할 때 "그가 그랬을 리 없어. 난 그를 잘 알아." 라고 말한다면 그 친구는 행복해 할 것이다. 당신이 그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깊이 있는 교제와 영혼의 소통을 경험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앎의 정도가 믿음의 깊이를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학습한 목사들의 교리는 이 명제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하나님을 알수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목사들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 몇 구절을 든다. 예수가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안 보고 믿는 사람이 복이 있다'라고 말씀한 것,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라는 히브리서의 말씀 등이다. 이런 이유로 그냥 하나님을 믿으라 말한다. 여기에 오류가 있다. 다시 앞 단락의 예화로 돌아가, 누군가 내 친구를 고소할 때 자신 있게 '그가 그럴 리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내가 알고 겪어 왔던 그 친구의 품행과 성정이 결코 그런 짓을 할 리 없다는 추론에서다. 그를 알기에 그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은 그 믿음의 바탕이 되는 교제와 소통과 앎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분에 대한 인격적 만남을 갖고 그 사랑과 긍휼과 약속과 신실하심을 깨달아 알기에 갖게 되는 신뢰가 곧 믿음이지, 선지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하나님은 이렇고 예수님은 저러하니 이것을 외고 암기하도록 하라 한대서 곧이곧대로 따르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목사들이 이따금 이단을 가리켜 하는 말 중, '저런 맹목적인 신앙은 그르다' 하는 것이 있는데, 대상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남이 하는 말만 듣고 믿어 충성하는 것이 곧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수가 "나를 따르라" 불렀을 때 제자들이 생업과 부모까지 내버려 두고 좇았던 것은 믿음 때문이 아니라 이미 그가 제자 될 것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예수가 원했던 믿음은 그와 함께 먹고 자며 가르치는 모든 공생애를 겪고 그를 이해해주는 그런 믿음이었다. 모인 무리를 앞에 두고 먹일 것이 없어 고심하던 제자들에게 이전에 행했던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깨우며 그 믿음 없음을 아쉬워했던 것, 거센 풍랑이 이는 호수 위에서 몹시도 두려워 떨며 괴로워 하는 제자들에게 책망했던 것이 다 그런 이유에서 아니었던가.
(사도들과 같은 직관 또는 택정함의 예외적인 믿음과, 교제를 통한 신뢰의 믿음을 구분하라.)
가이드라인에 지배된 사람들
정형화된 기도나 설교를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라'면서 실제로는 하나님과의 모든 교류를 차단하고 자신들이 만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오직 이것이 말하는 하나님만이 참되다 하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앎의 의지를 말살한 채, 그 빈자리를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벌충하여 만드는 신앙은 제대로 된 신앙일 수 없다. 내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목사들이 전하는 소문들 주워듣고 조합하는 하나님만이 남아 있다. 메멘토처럼 남이 만들어준 기억이 곧 신성한 신앙이 되고 실재하는 하나님에 대한 기억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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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신과 소통할 모든 권리를 박탈 당하는 대신, 신이 아닌 목사로부터 칭의를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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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학원 교육이 문제에 대한 깊은 사고보다는 정답 번호 맞추기에 골몰하도록 하고 있다는 우려와 똑같이, 기독교의 현실은 성도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분의 신실함을 깨달아가는 것보다는 '믿음'이라는 허울로 얼마나 더 교리에 자신을 규격화하며 지식을 통일화시켜가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얻는 것은 교리를 만드는 자, 즉 목사들의 권위와 교회의 권위가 더 높아지는 것이다.
(신의 매개자임을 자처하며 우매한 다중으로부터 독점적 권위를 수여받는 것은 이미 기원전부터 오랜 관행이자 악습이다.)
예수는 당신 스스로 교회의 머리가 되고 성도들이 교회의 몸이 되리라고 말씀했다. 그럼에도 지금의 교회에는 머리로서의 예수는 간 곳 없고 오직 목사뿐이다. 기름 부음 받았느니 인침을 받았으니 하면서 심지어 왕과 대제사장의 권위까지 어깨에 두르고 있는 게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다. 하나님과 예수는 어디로 갔는가?
비기독교인 앞에서 하나님을 말할 때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밖에 늘어놓지 못하고, 그들이 제기하는 기독교 교리의 논리적 맹점에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이 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참된 교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배운 지식, 학습된 교리로 도배된 것이기 때문이다. 실재하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배제한 교리만의 신앙은 끝없는 교조주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계산이 첨가된 그들만의 교리는 갈수록 원본과 전혀 다른 몽타주가 되어 가고, 때문에 진리는 구구해지고 궁색해지며 하나님이란 존재 자체를 모순 덩어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여전히 계속 된다. 이미 그들의 동력원은 하나님이 아니라 박제화된 하나님,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황금송아지상으로 바뀐지 오래기 때문이다. 우상이 만들어낸 모든 흠결과 모순들은 '오직 믿음', '오직 충성', '오직 순종' 따위의 구호로 덮어지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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