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드라마에 열광하는 분들이 대표적으로 꼽는 첩보 액션 드라마로 <24>와 <Alias>를 들 수 있다. <24>는 제목과 같이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즌1에서 사건은 자정에 발생하며 그것을 한 시간씩 쪼개 총 24부로 방영을 하는 것이다. 일본 NHK에서는 이 드라마의 방영권을 산 다음, 극중 시간에 맞추어 하루종일 연속방영을 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Alias>는 자신이 몸담은 비밀첩보기관에 의해 약혼자를 살해당한 여대생의 이중첩보작전을 큰 흐름 - 마치 X파일 같이 - 속에서 긴박감 넘치게 그려낸 작품이다. 상대는 '정체를 밝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약혼자를 죽여버리는 집단이며 주인공은 그들에게 신임을 받으며 정보와 자료를 획득해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복잡한 인간관계의 가지가 엉켜있다.
둘 중에서도 <24>쪽이 내 취향에 맞는 것 같다. 앞에 적었지만, 모든 내용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므로 한 회 분량에서 사건이 마감되기 어렵다. 3회에서 등장한 문제거리가 5회에서 해결되는 식의 구성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 <Alias>는 비교적 정리된 사건을 중심으로 편당 분배되는 첩보와 액션이 명확한 편이다. 이것을 두고 시원시원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지나치게 드라마를 가볍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무슨 말인고 하니, 특정 미션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충분히 담아내기엔 60분이 모자라므로 거의 가제트에 가까운 능력을 주인공들에게 부여해버리는 것이다. 이를테면 모든 문이 열쇠 하나로 열린다든지, 어떤 경비시스템이나 전산서버이든 수초만에 액세스가 가능해져버린다든지, 그밖에 허다하게 등장하는 007스러운 소도구들 말이다.
(자동소총을 든 적들도 일단 맨손인 주인공 앞에만 서면 총을 내려놓고 자신도 맨손으로 맞선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들이 아무 이유없이 주인공을 쏘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와는 달리 <24>는 등장인물 하나 하나의 상황판단 능력을 묘사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 개별능력들은 CTU(Counter Terrorism Unit)라는 시스템에 의해 종합/분석되고 지원(Back-up)되는 형태를 띤다. 그것이 좀더 개연성을 가지고 설득력 있게 다가옴은 물론이다. 따라서 <Alias>에서는 스토리라인만 탄탄하게 완성되어 있으면 수반되는 모든 에피소드가 척척 진행되어도 별 상관이 없지만, <24>에서는 주어진 상황을 각 인물이 어떻게 해석하고 결정/행동할 것인가를 정함과 동시에, 그 과정에 있어서 '선택'의 문제를 치밀하게 묘사하고, 아울러 그 묘사가 결코 시청자들을 한쪽으로 유도하지 않도록 하는 균형을 유지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그 안에 리얼리티가 빠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Alias>의 주인공 '시드니'가 만약 <24>에서 고문을 당했다면 그 고운 얼굴에 가장 먼저 칼집이 생겼을 것이다.)
생명을 존중한다며 적에게 진정제총이나 날리고 있는 <Alias>이니, 어떻게 보면 드라마 제작의 기본적 노선 차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점잖 빼며 원만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친CIA 드라마의 한계는 <24>에서 그야말로 깡그리 무시되며 - 그래서 'CTU'라는 생소한 집단을 내세웠는지도 -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재판증인까지 죽여버리는 정부요원은 시체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린 딸에게 '확실히 하기 위해 한 발 더 쏴라'고 말할만치 현실적이다.
※ <24>를 보실 작정이라면 관련정보를 절대 찾아보지 말고 그냥 보십시오. 관련정보 자체가 스포일러 투성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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