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과학에 대한 우려
중학교 때 교회의 여름수련회에서 아무개 전도사님의 특강을 들었는데, 락 음악의 사탄성을 주장하며 들었던 근거들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사람의 심장은 '강-약-강-약'의 패턴으로 뛰며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순리적인 모습이지만, 락 음악은 그것을 '약-강-약-강'의 패턴으로 변조하여 부자연스럽고 순리를 거스르는 기운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게 사탄의 계교라나 뭐라나...... 90년대의 순진한 중학생들이 뭐 생각이 있었겠는가. 전도사님 말씀이 곧 하나님 말씀이고 그게 그렇다니까 그런 줄로 알지. 하지만 오늘날에 '약-강-약-강'을 때려대는 드럼 연주는 교회에서 울려퍼지는 복음성가 속에 무수하게 등장한다. 우스운 일이다.
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나 주관적 견해를 고민없이 너무 자신있게 가르치고 전하는 바람에 하나님의 권위를 도리어 까먹어들어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내가 특히 이런 우려를 보내는 분야가 바로 '창조 과학' 영역이다.
창조 과학자들의 경솔한 논증
창조 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이하 '창조 과학자')이 보여 주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가설에 대해 철저히 '경솔한 논증'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대인들은 거대한 거북이 등이나 여신의 허리 위에 지구가 얹혀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욥기 26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땅(Earth=지구)을 공간(Space, Nothing=우주공간)에 다시며"라고 하여, 지구는 우주공간에 떠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과학적으로는 근래에 와서야 밝혀진 사실을 성경은 지금부터 수천년전에 이미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 창조 과학 관련 누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
정말 그런가?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세우시고 그 위에 세상을 지으셨다는 - '고대인들의 지구(우주)관'을 고대로 반영한 - 구절이 수십 번 등장한다. '공간에 다시며'에서 '우주공간에 떠있는 지구'를 떠올릴 수 있는 그 지혜라면, 이미 성경에서 평편한 지구의 모습을 증거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엔 더욱 충분하리라. 지동설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기 전까지 천동설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던 기독교에서 이제 '창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의 놀라운 지구과학적 지식을 자랑하기엔 너무 염치가 없어 보인다.
이렇듯, 창조 과학을 기조로한 성경 해석은 주로 우리가 '사실'이라 알고 있는 것에 이 구절 저 구절을 끌어다 맞춰넣는 유치한 작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림전 휴거의 연도와 월일까지 '성경적'으로 해석해낸 다미선교회와 다를 것이 없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 노스트라다무스도 울고 갈 - 이런 모습들이 '창조 과학은 과학을 가장한 사이비 고고학'이라는 비판을 듣는 주요한 원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추론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 바탕으로 예측을 한 다음 그 예측에 합당한 추보적 논거를 찾아내는 일반적 학문 체계는 완전히 생략된 채, 오로지 진화론의 몇 안 되는 취약점만을 물고 늘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독자적인 학문 체계를 이룩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상대의 미증(未證)을 반증(反證)이라 착각하는 고질적인 추태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추론의 오류 그리고 무비판적 전파
그러므로 비전문성에서 비롯된 추론의 오류가 빈번하고, 또 그것들이 걸러지지 못한채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이런 오류는 누리그물이 등장하기 전처럼, 정보수용자들이 피동적인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시절에는 그럭저럭 통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일 설교에서 목사님이 든 예화나 사례 하나라도 신빙성이 있는지, 사실인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권위'를 실추하는 결과가 더욱 쉽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게 있다. 지구과학자들은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 등을 통해 지구의 나이를 45억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창조 과학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과 계보를 종합해 아무리 길어도 천지창조가 이루어진지 1만년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창조 과학자 러셀 아크리지가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일 수 없고 1만년 정도일 것이라는 창조 과학적 견해가 더 타당하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증명해냈다. 정밀하고도 과학적인 관찰에 따르면 태양의 크기는 1세기에 0.1%씩 규칙적으로 줄어들고 있는데 이것을 역산하면 200만년 전에는 거의 지구 공전궤도만큼 컸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말 그랬다면 당연히 지구 같은 게 남아있을 수가 없었으므로,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는 주장은 말도 안된다는 얘기였다. 이 내용은 책으로까지 출판이 되었고 여러 창조 과학 관련 저서에 무수히 인용되었다.
태양이 규칙적으로 줄어든다는 건 사실이었다. 창조론과는 무관한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이 계속해서 관찰한 결과, 규칙적으로 줄어들던 태양이 다시 규칙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76년을 주기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미 창조 과학자들은 '수축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증명되었다며 희희락락하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지고 전파되었다.
또 다른 예. 여러 분도 들어본 일이 있으리라. 내가 중학교 수련회 때 들었던 내용이기도 한데, 미국 NASA의 한 연구원이 천체의 운동을 분석하여 계산해본 결과 하루 만큼의 시간이 빈다는 것이었다. 수치적으로 도저히 설명될 수 없었지만 성경에 그 해답이 있었다. 여호수아가 해와 달을 멈추게 한 그 사건 말이다.
'역시 성경 말씀은 진짜구나' 하는 탄성이 터져나오게 하는 이 멋진 일화는, 그러나, 그저 풍문에 불과하다. 이 일화가 최초로 언급된 것은 해롤드 힐이란 사람의 How to Live a King's Kid 라는 제목의 책에서였는데, 그 연구원이 누구인지 어떤 방법으로 산출해낸 것인지에 대해 전혀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하루가 비더라' 이게 그가 주장하는 전부다.
비근한 예를 보자.
많은 과학자들은 인류는 지구상 여러곳에서 각각 발생하여 여러종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문명도 지구상 여러 곳에서 각각 발생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에 미국 워싱톤 주립대학의 과학자들이 세포내 마이토콘드리아 DNA와 첨단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인류의 조상을 조사한 결과 인류의 여자조상은 한명이었음을 증명하여 그당시 '올해의 과학자 상'을 받게 되었다. 그때 시상식장에서 기독교를 믿는 교수들이 "성경만 읽어봤으면 될걸 그랬네(All he had to do was read the Bible!)"라고 농담겸 칭찬을 하였다. 정말 그렇다. 구약성경 창세기 3장 20절에 보면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이브)'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라고 기록되어있다. 현재의 모든 인류는 이브가 낳았거나 이브의 딸들이 낳았기 때문이다. - 이 역시 창조 과학 관련 누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글
'최근에', '과학자들'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료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이런 일화가 창조 과학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자료로 사용된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이 일화의 작자는 영문 발언까지 직접 인용하면서 '믿어 주시오' 하고 강변하고 있지만, 구글에서 이 발언으로 검색을 했을 때 오직
토씨 하나 바뀌지 않은 이 일화들만 검색된다는 사실
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는가?
더 안타까운 것은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은 그 결과가 정확하지 않음이 증명되었다'거나, '선진국에서는 진화론이 이미 폐기 처분되었으며 창조론이 과학적으로 타당함이 인정되었다'는 거짓말이 창조 과학자들을 통해 유포되고 있고, 너무나 많은 목사와 전도사들이 이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성도들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하나님과 그의 능력이 증명되어야만 하는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창조 과학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창조 과학 스스로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우습게 만들고 그분의 능력을 제한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심을 어찌 규명할 수 있단 말인가? 욥에게 하나님이 세상 만물의 이치를 물으시며 그의 지식과 지혜가 덧없고 가치없음을 꼬집어주셨다. 사람이 어설픈 지식과 지혜로 '창조 과학'이라는 이름을 빌어 하나님의 사심을 증명하려 바둥대지만, 그것은 증명될 필요도 없으며, 그 모든 증거가 아니 보이는 가운데 우리 믿음이 서고 자라나는 것이다.
우리가 성도들과 기도를 나누고 교제를 하면서 '지난 주에는 이런 이런 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러 저러하게 도우셨어. 참 감사해.' 하는 고백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세상 사람들이 우연이라 생각하는 그 모든 일상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루어진 것이고 그분의 돌보심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고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창조를 바라보는 우리의 고백도 그와 같을 수는 없는가? 푸른 하늘과 맑은 호수를 보며 하나님의 능력을 찬미하는 그런 소박함 말이다.
그 소박함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창조 과학이 계속 '과학적으로 옳으니 하나님을 믿으라'는 설득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간다면, 지적 자존심에 밀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비천한 것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가 증명되어 더욱 믿어지기보다, 아무 증거없어도 믿어지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고 믿는다.
끝으로 창조 과학자들의 과열된 욕심을 우려하는 데이비스 영 박사의 말을 곱씹어 보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오늘날 창조 과학 및 홍수 지질학을 유지하는 것은 믿지 않는 과학자에게는 호교론(護敎論)으로 쓸모 없을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비록 과학적 훈련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창조 과학자들의 말에 이끌린다고 해도, 믿지 않는 과학자들은 그런 터무니없는 것을 믿는 기독교는 관심을 둘 만한 가치가 없는 종교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창조 과학은 호교론으로나 복음적으로 헛된 것이다. 심지어 이것은 복음에 장애가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우려되는 위험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하느님의 진실을 지키는 데 있어 우리 자신이 틀렸다고 느끼게 되는 점이다. 이제는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젊은 지구, 홍수 지질학 창조론을 방어하는 것은 정직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때이다. 이는 하느님이 주신 사실에 일치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창조 과학을 그 해악이 실제로 나타나기 전에 버려야 할 것이다."
** 본문 요약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도 믿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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