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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지하철 노선도와 달리 그 자체로 복잡하기 그지 없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가 암담한 버스노선은 일찌감치 익히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알고 있던 노선은 단 하나, 헌혈하러 청량리 나갈 때 타는 38번(현 1222번) 버스 뿐이었다. 그마저도 희연 선배(쉬리엔)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안암역에서 석계역을 지나 청량리역으로 돌아가는 바보짓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최근의 서울시 버스 개편 때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나 말고 대부분의 서울시민이 원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니 그리 겁먹을 필요가 없을 듯 싶었다. 그래, 지금은 인터넷으로 노선을 조금씩 조금씩 찾아가며 버스-지하철 환승도 곧잘 하고, 버스 배차시간 불평도 늘어놓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래도 워낙 바탕이 없으니 늘 타는 노선 한둘이 아니고선 짐작조차 못하기 때문에, 누가 행여 길이라도 물을라 치면 일단 '모른다'고 내빼고 본다.
어제 서울역 앞에서 163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쪽지를 내밀며 여기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느냐고 묻자 지레 겁을 먹고 자리를 피했던 것도 그때문이라 스스로 변명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책감이 더해간다. 고희는 족히 넘긴듯한 백발의 할머니는 '서울시 방학동 XXXX 아무개' 라고 적힌 쪽지 하나를 덜렁 내밀었는데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울 정도였다. 무심하고 몹쓸 아들 녀석이 주소 하나 던져주고 오라 했을리 만무하지만, 천만명이 쉴새없이 오고가는 고립무원 아스팔트 위에 쪽지 하나 손에 쥔 할머니라니....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경찰서라도 모셔가 주소지를 확인하거나, 하다못해 피시방에라도 들어가서 버스노선을 검색해 도와드릴 수도 있었고, 끝내는 내가 직접 손을 붙잡고 같이 헤매는 것이 그 할머니에게는 분명 더 나은 일이었을 거란 데에 생각이 미치니, 가슴이 먹먹해질 따름이다.
지금 책상 앞에 앉아 버스노선을 검색하며 '이 버스를 탔으면 되는데....'하고 무익한 한탄만 하고 있다. 왜 우리 지혜와 결단력의 발은 상황의 요구에 늘 뒤쳐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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