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에서 휴가 나오는 길에 마석 읍내를 지나게 되는데 그 마을을 관통하는 경춘국도 길가 여러 군데에 석공소가 들어서 있다. 단조로운 부도와 석탑, 라이온스 클럽이란 글자가 새겨진 호랑이상에서 가족 납골당까지 하얀 화강암을 깎아 만든 조형물들이 즐비하다. 그중에 불상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불상들을 보면 늘 처연한 마음이다. 신라시대의 불상 양식이 어떻고 고려시대는 이러하며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전해졌다, 그리스와 인도의 양식이 어떻게 우리 석조 양식에 영향을 주었다 따위의 잡스런 국사 지식을 배웠는데 이제 그 양식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어서다. 망치와 정으로 바윗덩이에 숨겨진 부처의 형상을 끄집어낸 그 옛날의 석공의 모습과 전동절단공구와 연마기를 동원해 그럴듯한 모양의 석상를 만들어내는 오늘날의 인부들의 모습은 닮은 점을 찾기가 힘들다.
그리도 찬양을 받았던 조상들의 공예와 조각과 건축은 어디로 간걸까? 우리 나라의 문화는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걸까? 박물관 유리벽 안에서 잠자코 있는 이 빠진 장식품들을 빼고라면 우리 나라의 문화라는 것이 이제 남아있기라도 한 걸까?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노병의 동어반복처럼 학습은 계속되지만, 후사를 잇지 못한채 유명을 달리한 인간문화재 마냥 우리 문화는 늘 언제나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원래대로 숨기기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
자토이치
>는 일본이란 나라를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게 만드는 영화다. 문화는 향기와도 같아서 적의와 증오를 누그러뜨리고 결국에는 그 안에 동화되게 마련이라 들었다. 파괴하지 않고는 맞설 수 없는 무서운 것이라 들었다. '자토이치'는 우리가 감히 어쭙잖게 맞설 수 없는 거대한 산, 일본 문화의 미미한 단면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며, 우리가 버린 것이다. 여지없이 물에 녹아들어가는 소금인형처럼 문화가 척박한 우리 나라는 이런 영화 한 방울 한 방울에 녹아 바스러져 간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이 '자토이치'에 앞서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왜 되려 '자토이치'의 아류작이란 느낌이 드는 걸까? '킬빌'을 보고서 알듯말듯 했던 일본에 대한 호의가 '자토이치' 한 편을 통해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는 나라'로 문득 커져버린 탓이 아닐런지.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고통의 기억은 흐려져 간다. 학습된 고통만으로 자존심을 연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어쨌든 '자토이치'가 최고인 건 사실이다. 일본이 우리 나라보다 나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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