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들을 보면 헌법학자들조차 대체로 수긍한다고 제목을 뽑는데 그렇지가 않다. 법대생들 붙잡고 물어보라. 열이면 열, 자신이 공부해온 헌법학의 지식내에서 이번 판결을 설명하기 곤란해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지엄하신 판결을 쌍수를 들고 환영해 마지 않는 허영 씨 같은 분이야 자신이 소욕하는 바에 어떤 헌법원리라도 끌어다 쓸 수 있는 사람이니 무시해도 좋다. 참담하긴 마찬가지고 엎질러진 물 다시 담을 수 없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제130조
①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②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③헌법개정안이 제2항의 찬성을 얻은 때에는 헌법개정은 확정되며, 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여야 한다.
여러분이 알고 계신 헌법재판소의 결정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은 논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30조는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재적 국회의원 2/3 이상의 찬성과 국민중 국회의원선거권자 1/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절차규정이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은 내용상 개헌의 취지를 담고 있음에도 국회의원 1/2의 의결로 법률안 통과되었으며 따라서 130조 소정의 개헌절차 위반의 흠결이 있다(는 것이 헌재의 주장이다만 소위 실체가 없는 관습헌법의 개폐에 관한 문제라 헌재의 주문을 가지고 신행정수도특별법의 성격에 대하여 뭐라 꼭 집어 말하기는 힘들다).
문제는 '개정할 헌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관습으로 굳어진 헌법적 사항'의 존재를 들었지만 그것이 인정된다면 법상 최고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성문헌법 위에서 헌법재판소의 법형성 권한이 인정되는 셈이다. 즉, '헌법에 합치되느냐 합치되지 않느냐'를 판단하는 것이 본연의 기능이었던 헌법재판소가 이제는 '무엇이 헌법이냐'까지 결정하게 된 난감한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헌법 제1조 제2항)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로부터 나온다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다.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ㆍ국방ㆍ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130조를 문제 삼지 않고 72조를 들었으면 어땠을까?(김영일 재판관의 별개의견 참고) 태극기나 한글의 예와 함께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라는 사실은 비록 헌법이나 법률을 통해 직접적으로 명시된 예는 없다 하더라도 그 사실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법감정 혹은 법적 확신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불문헌법에 대한 기속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면 헌법재판소는 130조 규정의 국민투표권 침해로 법리구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72조 소정의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권의 재량권 행사 한계를 파고 들었어야 옳다.
아쉬운 건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여당이다. 130조로 이론구성하는 법리가 부인되고 72조로 선회했다 할지라도 9명중 8명이 위헌의견을 낸 헌재의 입장이라면 마찬가지로 위헌결정이 내려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한나라당 보다 미워보이는 게 노 대통령과 집권여당일 수밖에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왔다. '틈을 보이지 말라'고. 정권교체후 8년여가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향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의 망령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딸이 단지 같은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거대 일당의 당수가 되어있는 현실에서, 방만하게 나대며 틈을 보이는 건 그들을 향한 기대를 갖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에 대한 죄악이다.
국산 애니메이션 <원더풀데이즈>가 저지른 최악의 죄과가 무엇이었던가. 백수십억의 투자비를 날린 것만으로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 그로 말미암아 '한국 애니는 안돼'라는 인식과 더불어 향후 십수년 내에 국산 애니 전반에 대한 총체적 불신과 투자 기피 현상을 불러왔다는 것, 그게 문제다. 노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처한 상황이 그것과 꼭 닮았다.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자에게 기꺼이 한 표를 던졌던 사람들조차도 최소한 20%이상이 그의 당선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이전 찬성입장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왜 그런지 아직도 모르겠다 갸우뚱거리고, 내일부터 당장 한나라당 한나라당만..... 입이 닳도록 논평을 해대겠다면 암담 그 자체다.
현실적으로 군사정부 시절을 답습하는 합종연횡식 국회의원 끌어모으기가 아니고서는 국회의결 정족수를 채우기도 힘들어 보이며, 설사 그 관문을 통과하더라도 국민 절반의 동의를 구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아무래도 방법은 하나다. 남은 2년반 동안 눈썹이 휘날리고 코피가 터지도록 일해서 경제를 살려놔라. 한나라당이 아니라 두나라당 십나라당 백나라당이 와도 허튼소리 못하게 만들어놓고 국민을 설득해라. 노무현 정권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겠다 하는 정도의 신뢰를 받게 된다면 그제서야 개헌안을 내놓아라. 행정수도 이전이 노 정권을 위한 카드가 아니라 진실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진정성을 몸으로 증명하란 말이다. 이 상황에서 무지한 국민을 탓하겠는가 브레이크 없는 헌법재판소를 탓하겠는가. 그 수밖에 더 있겠는가?
덧.
너무 냉소적으로 쓴 것 같다.
노 정권에 아쉬운 건 여러번 강조하듯이 그 뼛속까지 들어찬 아마추어리즘이다. 과거사특별법을 입안할 때 사전에 그 취지와 판단기준에 대해 명확히 하지 못한 우를 범했고 그 결과 김희선, 신기남 의원이 일격을 받는 풍비박산을 겪었다. 행정수도 이전도 '행정수도'라는 말썽 많은 이벤트성 화두로가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실천방안이 있다. 그런데도 굳이 문제를 일으키고 논란이 될 게 뻔한 방법을 택하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운영의 묘를 좀 터득해라. 5년동안 연습만 할 순 없단 말이다.
덧2. (기우)
이번 판결은 '방법이 잘못 되었다'를 지적한 것일뿐 '행정수도 이전은 옳지 않다'를 밝힌 것이 아니다. 행정수도를 위헌이 아닌 테두리에서 어떻게 이뤄낼지 노무현 정권의 큰 숙제가 생긴 것이라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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