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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지연 학연 자체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처럼 초면에 첫 마디 떼는 것부터가 특집 행사인 사람들에겐 그것들이 대인관계의 윤활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다른 이에 대한 호의를 부당히 다른 곳으로 돌려넣는 것이 아닌 이상,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의미에서의 혈연 지연 학연은 긍정적이다.
지난 월요일, 모 대학 법과대학 강당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의 강연회가 있었다. 학교의 이름으로 주최한 행사도 아닌 일개 단과대학의 4백석 남짓한 초라한 강당에서 대한민국 특별시장이 강연을 했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 이 시장은 그 대학 경영대를 졸업한 동문이었다. 그것에 대해 무슨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학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시간을 쪼개어 기꺼이 번거로운 걸음을 해준 것은 다른 누구에게 해가 되지 않는 순수한 호의라 평가해줄 수 있다. 문제는 그 호의에 과잉하여 화답했던 몇몇 교수들이다.
법과대학에서 행정법을 전공하는 모 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학점 추가점수를 걸고 강연회 참석을 독려했다고 한다. 이 시장을 좋아하지 않고 그의 강연회 따위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강연회에 불참함으로써 학점상의 불이익을 받게 된 셈이다. 법과대학에서 상법을 전공하고 지적재산권 관련 단체의 고위직을 맡고 있는 또다른 모 교수는 강연회의 말미에 출연하여 그야말로 사족을 덧붙였다. 그 내용이란게 '이 시장과 노 씨(표현이 정확히 '씨'였다)의 비교', '이제 우리가 힘을 모아 이 시장을 더 큰 물(?)로 보내주어야 한다'는 따위의 것이었다. 그야말로 정치쇼였던 셈이다. 성질상 자화자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치더라도 '지방자치단체장의 역할과 지방발전'을 주제로 연사를 초청한 강연회에서 오직 학연이 있다는 이유로 해서 '오버액션'을 취한 두 교수의 모습은 정말이지 개운치 않다.
난재유림역자향(蘭在幽林亦自香)이라는 말이 있다. 돋아난 풀이 난초라면 그것이 설령 깊은 숲속에 있다 할지라도 스스로 향을 내뿜게 마련이다. 주변에서 온갖 잡초가 칭송을 올리고 머리를 조아린댔자, 들풀이 난초가 되지도 않고 난초가 들풀이 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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