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무엇이다' 혹은 '무엇무엇 했다'라고 말했을 때 대뜸 상대방이 '정말?'이라든가 '진짜?'하고 되물으면 몹시 불쾌하다고 언젠가 인이는 말했다. 나는 흠 그러냐고 겉으론 관심없는 척하며 화제를 딴 데로 돌렸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별 싫어하는 게 다 있군' 생각했다. 친구 사이에 조금이라도 색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정말?', '진짜?'로 화답하는 게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잖은가. 하지만 인이는 부득부득 '아니, 그럼 내가 거짓말을 했겠어요?' 하면서 '정말?'과 '진짜?'를 대단히 못마땅해했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래?' '응' 등이 차지해야 할 언어습관 자리에 '정말?'이라든지 '진짜?' 따위가 홍수처럼 들어찬 것이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맛있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고서도 그냥 '맛있다'가 아니라 '진짜 맛있다', '정말 맛있다' 정도는 표현해줘야 비로소 '맛있음'의 평균으로 취급해주는 오늘날의 언어생활문화가 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좀더 삐딱하게 바라본 인이의 불쾌감처럼, 사람이 사람의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사회문화가 그런 언어생활문화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표현의 과잉은 누리꾼(네티즌)들의 글생활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저 '공감한다'라는 한 마디로는 상대방에게 내 공감의 정도를 전달하는 데 만족스럽지가 않다. 100% 공감은 기본이며 150%, 200% 정도는 공감을 해야 '공감 좀 하는군'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심지어 1000000000000% 처럼 몇자리인지를 세기 조차 힘든 열렬한 공감도 흔하다. 숙녀의 사진을 보고 '이쁘시네요'라고만 말하면 오히려 안 생겼다고 빈정대는 뉘앙스마저 느껴진다. 최소한 '정말 정말 이쁘시네요'라고는 말해줘야 '당신은 이쁘다'는 내 생각의 최소량이 전해지는데 성공한다.
앞뒤 잘라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과장법이 가미된 개인의 개성있는 표현법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개성이라는 그릇이 담긴 유행이라는 그릇과, 또 그 그릇을 담고 있는 문화라는 큰 그릇이 만들어진 배경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앞에서 말한 불신의 습관화라든지 표현의 일상적 과용 같은 인자들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게 된다.
다른 간판들 보다 돋보이기 위해 더 화려한 간판을 세우고, 그 간판보다 더 돋보이기 위해 또 다른 간판을 만드는 악순환처럼, 표현의 과용은 말 한 마디에 담긴 상대방의 진정성을 더욱 의심하고 희석시키는 쳇바퀴를 돌게 될까 걱정된다. 돈은 리디노미네이션이라도 한다지만 언어는 어찌할 것인가. 존재의 집이라는 언어가 가벼워질수록 안에 담긴 우리 정신세계도 희박해져만 간다.
덧.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가 입버릇처럼 "이건 정말이다'라고 말하던 모습이 왠지 이 시대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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