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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로난 예 이샤매
앞선 글을 쓰고 나니 페터 빅셀의 글이 생각 났습니다. '우유 배달부와 블룸 부인'은 그의 무척 짧은 단편 소설 중 하나입니다. 페터 빅셀의 글을 읽으면 준희 님이 생각나지요. :)
우유 배달부가 쪽지에 이렇게 써 놓고 갔다. '오늘 버터 떨어졌음. 죄송합니다.' 블룸 부인은 쪽지를 읽고 나서 우유값을 계산해 보고 고개를 젓더니 다시 한번 계산을 해 보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2리터, 버터 100그램. 어제는 버터가 없어서 넣지 않았었는데 버터 값을 계산하셨어요.'라고 썼다.
다음날 우유 배달부는 '죄송합니다.'라고 써 놓았다. 우유 배달부는 새벽 네시에 온다. 그래서 블룸 부인은 그와 만나 본 적이 없다. 그와 한 번 인사를 나누어야 할 텐데, 하고 그녀는 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인사를 하려면 새벽 네시에 일어나야 한다.
블룸부인은 우유 배달부가 그녀에게 화를 낼까, 그녀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녀의 우유 단지는 찌그러져 있다.
우유 배달부는 그 찌그러진 우유 단지를 알고 있다. 그것은 블룸 부인의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우유 2리터와 버터 100그램을 받는다. 우유 배달부는 블룸 부인을 알고 있다. 그에게 그녀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블룸 부인은 우유 2리터와 버터 100그램을 받습니다. 그녀의 우유 단지는 찌그러졌고, 글씨체가 분명해서 읽기 쉽지요.'라고 말할 것이다.
우유 배달부는 그녀에 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외상을 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혹 10라펜이 모자라는 일이 있을 때는 - 그야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 그는 쪽지에다 '10라펜 부족'이라고 쓴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 두말 할 것도 없이 부족했던 10라펜이 놓여 있고 쪽지에는 '미안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그런걸 가지고 뭘.' 또는 '천만에.' 라고 우유 배달부는 생각한다. 그가 쪽지에 그 말을 쓴다면 그건 이미 편지를 주고 받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쓰지 않는다.
우유 배달부는 블룸 부인이 어느 층에 사는지에 관심이 없다. 우유 단지는 아래층 계단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유 단지가 그 자리에 없어도 우유 배달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조기 축구팀에 블룸이란 선수가 있었다. 우유 배달부는 그 선수를 안다. 그는 두 귀가 앞으로 쫑긋 일어서 있었다. 아마 블룸 부인도 쫑긋한 귀를 가졌을지 모른다.
우유 배달부들의 손은 지나치리만치 깨끗하다. 분홍빛 나는 두툼한, 깨끗이 씻은 손이다. 대개가 그렇다. 그의 쪽지를 볼 때면 블룸 부인은 그런 손을 생각한다. 그가 10라펜을 잘 받았겠지. 그녀는 우유 배달부가 그녀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가 그녀의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렇지만 누구도 우유 배달부를 알지 못한다. 적어도 이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우유 배달부를 보지 못했다. 그는 늘 새벽 네시에만 이 구역을 돌기 때문이다. 우유 배달부는 자기의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새벽 네시에 우유를 가져오는 사람은 자기의 의무를 이행하는 자이다. 일요일에도 평일에도 매일 한결같이. 아마도 우유 배달부는 급료가 좋지 못하고 돈 계산을 할 때 자주 돈이 모자랄 것이다. 우유값이 오르는 것은 배달부의 죄가 아니다.
그리고 블룸 부인은 우유 배달부와 꼭 인사를 나누었으면 한다.
우유 배달부는 블룸 부인을 알고 있다. 그녀는 우유 2리터와 버터 100그램을 받으며, 또 찌그러진 우유 단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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