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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은 대상이 공중(公衆)에 가장 강하게 인식된 바를 요약하는 명칭이다. 수업시간에 설사를 했던 한 친구는 남은 학창시절 내내 '설사~' 혹은 '셜~'로 불렸고, 얼굴이 길었던 기정이는 '말', 상반신과 머리가 유난히 비대했던 어떤 녀석은 이름 첫글자와 대(大)를 붙여 '하대'라 불렸다.
군시절에도 흐름은 계속 되었다. 그 부분이 유난히 컸던 문태환 병장은 일병시절부터 '문자지' 또는 '자지'로 통했고, 나 보다 두 살이나 어림에도 훨씬 노쇠한 얼굴을 가졌던 동기 진석이는 '할배', 이발병 이준복 병장은 이름에 강세를 주어 '뽁어', 송명규 병장은 이름에 걸맞는 코옆의 큰 점 때문에 '맹구'가 별명이었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친형 혼자서만 부르는 '빈대'라는 별명을 빼면, 고2 같은 반 노정은이란 친구가 붙여준 '고지식한 어린이' 말고는 별명다운 별명이 없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고지식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지만 주변에서 느끼는 내 고지식은 상당한 수준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꽤 '노는' 축에 속했던 손승희가 두터운 뿔테 안경을 쓴 조그만 녀석에게 일부러 다가와 친한 척을 하며 급기야는 그 녀석과 친해보기 위해 물어물어 제 발로 교회까지 찾아 왔던 것도 모두 그 '고지식'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과연 내가 고지식했을까? 그때의 내가 그토록 고지식했었다면 이 성경말씀 때문일 거라 짐작한다.(고2 초반, QT를 하며 접한 말씀이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所見)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25)
원칙이 절대성을 상실하게 되면 원칙을 대체하는 상대적 기준이 난무하게 되는데 그 기준이 다 제각각이다. 통행차량이 거의 없는 편도 1차로의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을 때, 그 신호등이 도리어 보행자를 번거롭고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공감을 한다. 공감에 대한 대책으로서 원칙은 간결하다. 어쨌든 신호를 지키는 것이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있건 말건 1분30초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 원칙의 고수(固守)를 고지식이라 평가하는 사람은 원칙을 변용 - 무단횡단 - 하는 융통성을 갖는다.
나는 후자를 비난해오고 그래서 전자대로 살았'었'다. (그래서 고지식하다는 얘기를 들었겠지.) 후자에는 각각의 '소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편도 1차로에서의 무단횡단이 융통성이라면 편도 2차로는 어떤가, 분당 통행차량이 몇 대쯤 되어야지 무단횡단이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인가 등등 고지식이라 폄훼하는 원칙을 벗겨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작업도구들이 모두 규격이 다르다. 그것을 가리켜 사사기 기자는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거부했었던 것이고.
하지만 세상일이란 그리 간단치만은 않았다. 타협과 융통성의 경계는 도대체 어디인가. 성소의 진설병을 먹었던 다윗과 안식일에 곡식을 훑은 제자들을 옹호한 예수의 '소견'은 당사자가 다윗과 예수라는 이유만으로 고지식을 탈피한 원칙의 '합리적 변용'일 것이며, 타협이 아닌 융통성을 겸비한 자세라 할 것이지만, 정작 삶의 첨단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과 삶은 그렇게 명료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목사마다 주장하는 '원칙'마저 다르고, 그 원칙의 주창자의 뜻까지도 저마다 달리 해석되는 이 땅에서 '왕의 뜻'과 '각각의 소견'을 분변(紛辨)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늘 고민중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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