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만 해도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여학생의 숫자가 상당히 적은 편이었으므로 이 고시원에는 따로 여학생 전용층이 있지 않았다. 다만 2층 호실 통로 두 개중 하나에는 여학생 입주만을 받는 정도의 배려는 하고 있었다. 나는 반대쪽 통로에 입주해 있었는데 한 해가 넘어가면서 여학생 숫자가 부쩍 늘어나는 바람에 그 해 말에는 2층에 나와 또 다른 한 명의 남학생 빼고는 모두가 여학생 방이었다.
어느날 밤이었다. 출입통제시간(새벽1시~5시)을 한참 넘긴 3시쯤이었는데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직감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 통로 끝에 있던 내 방까지 들어왔다가 다시 한 번 통로 중앙홀까지 가서 고개를 갸웃 거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바로 그때 여학생 전용 통로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사내 둘이 후다닥 달려나왔다. 어두웠지만 나는 그 중 한 명이 주인집 아들인 것을 알아차렸다.
원래대로 숨기기이내 한 여학생이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꿈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는데 그게 꿈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가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는데 이내 후다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 부리나케 뛰쳐나왔다는 설명이었다.
낭패스러웠던 것은 그때 고시원 안에는 관리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무렵 관리인으로 일해오던 할아버지 한 분이 그만 둔 후로 주인집 아들이 임시로 관리실에 죽치고 앉았었다. 새벽이면 친구들을 불러놓고 퍼질러대는 게 아주 형편 없었다. 어쨌든,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혼자 그 망할 놈의 주인집 아들을 찾아 나섰는데 그 놈의 친구란 녀석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자기 친구를 왜 찾냐는 것이다. 내 이러이러 해서 찾는다 했더니, 아니란다. 그는 자정무렵부터 피곤해서 4층에 있는 빈방에 들어가 자고 있었단다. 그래 자고 있었는지는 내가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다 나오니까 데리고 오라 그랬다. 아니, 직접 찾을테니 몇 호실인지만 말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녀석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엄포를 놨더니 녀석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부르면 뭐라 그럴 거냐? 누가 강간이라도 당했느냐? 문을 따고 있는 걸 직접 보기라도 했느냐?'며 막무가내로 나왔다. 짧은 시간동안 머리를 굴려봤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말마따나 입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저쪽에 서있던 여학생에게 다가가 말했다.
"경찰을 불러도 어떻게 수가 안날것 같네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생각엔 날 밝은 다음에 고시원 주인한테나 강력하게 항의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일단 사과부터 받은 다음, 저런 개망나니한테 관리실 맡기지 말고 빨리 정식 직원 채용하라고 말해야죠. 주인집 아들이 뛰쳐나오는 걸 직접 봤으니, 발뺌하면 제가 나서서 무슨 수라도 쓰겠습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었다. 다음날 저녁, 내 방문을 두드린 고시원 주인은 자기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3층으로 방을 옮겨줄 것을 권유했다. 왜냐고 묻자,
"여학생들이 남자들은 불안하다고 해서"
라고 대답했다. 상황은 이런 것이었다. 주인집 아들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고 아는 친구 두셋이서 주인집을 찾아가 2층을 여학생 전용층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던 것이다. 졸지에 나와 또다른 남학생은 하룻밤새 여학생들의 평온함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때 정말 분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시원 주인은 펄펄뛰는 나를 보고 당황해서는 같은 값에 더 넓고 좋은 방으로 옮겨주겠다며 부단히 설득했다.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분했던 것은 나란 존재가 매도 당했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추행을 당할 뻔 했으면 그 추행미수범을 잡아야지 왜 같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한 층에 있기도 싫다 말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심정적으로 그럴지라도 그렇게 행동하면 안되는 거 아닌가. 그 밤에 내 일처럼 눈이 뒤집혀서는 주인 아들 잡겠다고 돌아다닌 스스로에게 환멸이 느껴질 정도였다.
같은 맥락이다. 범죄자는 남자라서도 아니고 여자라서도 아니고 범죄자이기에 처벌하고 억제되어야 한다. 거기에 '남자라서'라는 가치판단이 개입되면 전선 자체가 헝클어져 버린다. 총질을 하려면 앞을 향해 똑바로 겨눠야 할 게 아닌가. 피아구분없이 '남자니까' '남자라서' '남자이기 때문에'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버린다면 정작 좋아할 사람은 그 안에 함께 묻혀버릴 진짜 범죄자들이다.
내 경우에서처럼 더없이 큰 힘이 되어줄
'엄폐물' 하나가 무고한 적군이 되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이번 대자보 사건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처럼 피해망상적 편나누기에 함몰된 치기 어린 여성운동이라면 진정 그녀들이 꿈꾸는 안전한 세상은 이 땅 위의
불알달린 족속을 모조리 진멸하고 나서야 도래할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명 오늘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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