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다모'를 보려고 시도했지만 또 다시 실패했다. 이로서 네 번째... 1부만 4번을 본 셈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건은 아무래도 중국/홍콩류의 오버액션을 싫어하는 취향일 것이나 그에 못지 않은 이유가 연기자들의 발성에 관한 문제다.
주인공격인 황보윤 역의 이서진, 채옥 역의 하지원의 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안간힘을 다하며 고음처리를 하고 있는 역량 부족한 댄스가수가 떠오른다. 듣고 있는 사람이 불편할 뿐더러, 연기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대사의 미묘한 떨림 하나하나에 염려가 쏟아진다.
분명 현대물과 사극은 대사의 톤이 판이하게 달라서 고음위주의 단발성 발음이 주종을 이루는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저음에 길게 끄는 어미가 특징이다. 앞서 말한 두 연기자, 특히 하지원의 경우 저음처리를 거의 못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녀가 하고 있는 대사는 그저 '목소리를 낮게 깔고 있는 것'일 뿐이다. '목소리를 깐다'는 게 무슨 말인가. 작위적으로 단선적인 저음을 낸다는 것이고 따라서 대사에 연기를 싣기 위해 필수반되어야 할 '어조'의 표현이 전무하다는 얘기다.
이것을 연기자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억울한 게 사실이다. 현대물에 길들여진 연기자들에게 어느날 촬영장에서 사극톤의 목소리를 요구한다는 건 무리다. 그럼에도 저음의 발성이 익숙치 않다면 그것을 부단히 연습하는 것 역시 연기자의 마땅한 직업정신일 것이다. 한편으로 발성에 분명 문제가 있는 연기자임에도 네임밸류 소위 '이름값' 때문에 기용하고 또 촬영장에서 큰 고민없이 컷 사인을 내는 피디 역시 면책될 수는 없다.
대장금은 어떨까? 전 제조상궁을 연기한 박정수 씨와 현 제조상궁인 견미리 씨는 연기 경력답게 탁월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 두 분의 연기에 대해선 도저히 흠을 잡을 수가 없어 기립박수라도 보내고픈 심정이다. 이영애 씨의 연기에 대해서는 꽤 말이 많으나 분명 하지원 씨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안정된 발성을 보여주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간혹(실은 꽤 많이) 등장하는 사극답지 않은 대사들은 그녀의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장금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묘사하기 위한 작가와 연출자의 의지의 표현이며 이영애 씨는 그와 같은 요청에 성실히 답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연기는 가장 적확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나아가 사극 초짜인 지진희 씨는 기대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자 연기자 가운데서는 상당히 괜찮은 발성을 들려주고 있는 임호 씨에 버금갈만큼 그의 목소리는 훌륭하다. (가끔 야외씬에서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발음이 꼬이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러나 대장금에서도 문제는 꽤 많았다. 가장 먼저 등장했던 것이 정상궁을 연기했던 여운계 씨. 허례를 좇지 않는 자유분방한 인물을 나타내기 위해 그와 같이 털털하고 깡마른 목소리를 내었다고 봐 줄 수도 있겠으나, 글쎄..... 내가 듣기엔 발성은 커녕 발음 자체가 제대로 안됐다. 그와 같은 치명적인 흠결은 정도를 따르는 정상궁의 카리스마를 표현하는데 상당한 장애가 되었고, '놀랍도록 깊고도 무서우나,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인 정상궁을 '어쩌다 최고상궁이 되었고, 원래 좀 괴짜같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오늘의 하일라이트.... 열이 역의 이세은 씨다. 이세은 씨의 연기를 보자면 참담한 기분이 든다. 최악이라 생각했던 하지원 씨를 무색하게 만든 그녀의 발성은, "목소리만 팍팍 깔면 카리스마는 따라온다"는 신념이라도 갖고 있는 건지 물어보고 싶어지게 만들 정도다. 낼 수 없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성대에 무리하게 힘을 넣고 있으니, 발음도 부정확하고 성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어조 조절이나 어미의 부드러운 맺음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이따금 발성에 온 정신을 집중한 나머지 단어의 장단 조차 맞추지 못하는(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터무니 없는 실수도 눈에 띈다. (목소리만 이야기해서 그렇지.... 39부에서 내의정 정윤수에게 눈웃음을 치는 장면 등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최악의 연기였다.)
돌이켜 보자면 이병훈 피디님의 연출작 가운데, 출연 연기자들의 발성이 가장 으뜸이었던 사극은 허준이었다. 전광렬 씨의 목소리는 정말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의 선율이었다. 예진 아씨 황수정 씨는 비록 처음에는 하지원 씨와 맞먹을 정도이긴 했으나 회가 반복되며 상당히 나아지는 발성을 들려주었다. 상도는 또 달라서, 임상옥 이재룡 씨는 정감 물씬 풍기는 전광렬 씨와는 또 달리, 강단있는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그중에서도 청국말 대사장면에서는 연기를 위해 암기한 것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치 자신있는 발음과 어조를 구사하는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상도의 티라면 채연 역의 김유미 씨 정도?) 이들 드라마에 비하자면 대장금은 연출의 파격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면 상당히 품질이 떨어지는 축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운계 씨와 이세은 씨의 예만을 들었지만 중전마마 역 박정숙씨의 발성도 칭찬들을 만한 수준은 아니고 신익필 교수 역의 박은수 씨 역시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연기자의 발성에 관한 문제가 많은 대장금..... -_-
아무리 좋아하는 드라마라지만, 비평없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느끼고 생각한다. 아무튼 요즘 이세은 씨 연기, 심히 거슬린다. 촬영분 약간 남았을 테니 목에 힘 좀 빼고 분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사람 좋자고 하는 얘기 아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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