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그리도 술 마시는 자를 배척하기에 도대체 술이 어떻길래! 하는 궁금함이 생겨 1998년 3월 어느날 음주 보고서를 작성했었다. 술 마신 나지만 머리에 뿔이 나지도, 신앙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술은 그냥 술이다. 많은 경우에 그렇듯 과함과 무절제함이 아니라면 술에 적개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사람도 도맷금으로 팔아 넘기지 말아야 한다.
원래대로 숨기기1998년 3월 11일 수요일 오전 00시 19분
소주를 두 병 샀다. 술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실험하려 한다. 흥미진진하다. 박진감도 넘치고... 바람이 실내로 불기 때문에 창문을 닫았다. 변수를 없애기 위해 컵을 씼었고 오줌도 미리 누었다. 보통 안주가 곁들여지므로 나는 비엔나 소세지를 샀다. 청각 반응도 아울러 살피기 위해 라디오를 들으며 실험을 진행하겠다.
00시 25분
실험시작. 1/3컵 마시다. 소주는 쓰다. 위가 뜨거워진다. 비엔나가 짭짤하고 맛있다. 정신은 이상없다.
00시 30분
또 1/3컵. 얼굴이 찌푸려진다. 맛은 정말 없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다.
00시 35분
또 1/3컵. 한 번에 다 못 마시고 두 번에 걸쳐 마셨다. 아우, 맛 진짜 없다. 목이 뜨겁니다.
00시 40분
또 1/3컵. 고문이다. 목에 걸려 기침했다. 혀 뒤와 견구개가 술에 쩔었다. 약간의 토기가 있다.
이야!! 화면(시야)이 이상하다. 자다 막 일어난 것 같다. 뒷골이 띵~하다.
00시 45분
1/3컵. 뒷골이 매우 무겁다. 행동이 과격해진다. 컵을 내려놓을 때 아주 박력있다. 우하하하! 아직 내가 나라는 건 안다.
아! 그리고 한 병 다 마셨다. 지금부턴 10분마다 마시겠다. 얼굴을 만져보니 느낌이 좀 둔하다. 술병을 바닥에 제대로 내려놓지 못했다. 균형감각이 없어진다.
00시 51분
상당히 졸린 상태에서 정신이 없는 것처럼 아주 어지럽다. 머리가 무겁고 손도 무겁다. 라디오는 잘 들린다.
멍하다. 아직은 절제할 수 있다. 일어서 보니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한 번 동작하면 관성이 붙어서 멈추고자 하는 데서 멈출 수가 없다. 그러나 애를 쓰면 잘 걸을 수 있다.
00시 55분
1/3컵. 마실만 하다. 얼굴이 뜨겁다. 라디오는 잘 들린다. 피부의 감각이 거의 없다. 고개가 까딱까딱 한다. 눕고 싶다. 아직 비엔나는 맛있다. 밖에 나가 왔다갔다 했는데 아직 균형감각이 있다. 경찰에 걸려도 거뜬하다.
앗! 비엔나가 떨어졌다.
01시 48분
실험에 상당한 오차가 생겼다. XXX와 50분 동안 통화했다. 술이 좀 깼을 것 같다.
01시 49분
1/3컵. 실험을 계속한다. 술 냄새가 목구멍에서 코로 느껴진다. 화끈하고 산뜻하다.
02시 00분
1/3컵. 몸이 가려워서 긁어도 가렵다. 코끝에서 술냄새가 아득하다. 실험시작 후 처음으로 오줌을 누다.
02시 06분
속이 아프다. 정신상의 변화는 별로 없다.
02시 12분
1/3컵. 마실 때의 느낌이 없다. 코에서 술냄새가 난다.
02시 17분
또 토기를 느꼈다. 일어서 걸어보니 균형이 안 잡힌다. 아무래도 경찰에 걸릴듯... 두 번째로 오줌을 누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납작해 보인다.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니 제대로 보인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것 같다.
손으로 턱을 괴려고 하면 벽에 꽈당 하고 쓰러진다. 그러나 정신을 집중하면 힘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아직 내 정신이라는 얘기다. 침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라디오는 너무나 또렷하게 들린다. 배가 조금 아프다. 졸린다.
02시 28분
토할 것 같은데 정도가 좀 심하다. 다음 잔을 마시고 싶어도 토할까봐 마시지 못한다. 주기도문이 무난하게 외어진다. 사도신경도 문제없다. 다만 중간에 끊기면 어디서 끊겼는지 기억이 안나므로 다시 처음부터 외어야 한다. 글을 쓸 수 있는 걸 보니 정신은 있다.
02시 31분
마지막 1/3컵을 마시다. 끝이다. 이제 두고 보는 것만 남았다. 왼쪽배가 아프다. 괴롭다. 몽롱함과 괴로움이 함께 밀려온다.
02시 34분
정신은 말짱하다. 세 병 살 걸 그랬나. 이래서는 실험이 안되는데.....
졸음이 마구 쏟아지는 중에도 청각만은 이상하다 싶을만치 또렷하다.
02시 40분
아.... 거의 내정신이 아닌 것 같다. 속이 부글거린다.
02시 43분
무의식 중에 토했다. 먹은 게 없으니 그냥 맑은 알콜 그대로다. 라디오는 여전히 잘 들린다. 이소라가 청혼가 같은 것을 부르고 있다. "내가 차마 네게 할 수 없는 말 사랑의 처음 느낌 그대로...." 눈 앞이 빙빙 돈다.
02시 52분
몸을 가누기 힘들다. 양파가 노래 부른다.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어요. 그대의 따뜻한...."
03시 19분
한계지점에 다다랐다. 내 정신이 아냐......
(쓰러져 잠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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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모름] 지하철 그녀의 시선](http://reedyfox.com/bbs/icon/member_image_box/1/subway1.jpg){kind=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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