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해 전
뒷머리 아래쪽을 깎아 위쪽으로 부품하게 올린
상고머리가 한참 유행하던 때다.
머리 아래쪽 부분에 동전크기만한 구멍이 나버려
커트하던 미용사가 몹시 난감해하던 기억이 난다.
어째어째 커트를 끝낸 후
'땜통'을 그냥 둘 수 없어 피부과로 달려갔더니
놀랍게도,
그 부분에 주사를 놔 주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많으신가요?.....'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듯
무덤덤한 투로 의사가 던진 말이다.
스.트.레.스.라.....
그 말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좀 받은 것 같다.
난생 처음으로 뒷통수에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서 집으로 오는 기분이 아주 묘했다.
그 후 상고머리 유행도 금방 사그라져 자연스레 '땜통'건은 잊어버렸었다.
지난 토요일
이마트에 있는 ** 헤어스튜디오에 갔었다
오래된 제자가 수석 헤어 스타일리스트로 근무하는 곳이라
'놀토'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간 것이다.
녀석은 몹시 반가워하면서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는데
'쌤 머리 뒤 쪽에 탈모가 된걸요....'라고 한다.
'음- 원형 탈모 그거 말이야? 머리에 가리면 잘 안 보이지?'
떠오르는 여러 생각을 누르고 애써 태연하게 말했지만
살짝, 마음이 무거워진다....
'요즘은, 이게... 굉장히 많아요. 저도 다 빠졌어요...새로 좀 나긴했지만....사람들이 스트레스가 많다보니....'
웃는모습을 보니 단순히 접대용 말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릴만큼 녀석의 얼굴이 까칠하다.
머리는 젤을 발라서 멋지게 세워두었지만 왠지 좀 퍼석해보인다.....
'왜? 장가가고 싶어??? 그러게.....ㅋㅋ...자꾸 기다리지만 말고....'
나이가 꽉 찬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은 진작에 들은터라 결혼을 빨리 할 사정이 안되나보다...라고 생각만 했었는데 막상 그렇게 여자쪽에서 강하게 반대하는 줄은 몰랐다. 몇 년간에 걸친 장모 될 사람의 격렬한 반대에 이젠 지쳤노라고. 궁합도 사주도 안 맞단다. 직접 사주 팔자를 보는 분이란다....거의 신앙에 가깝도록 반대한다니...
원래 차분하고 말이 적고 섬세했었던 녀석은 미술대학을 다니다가 헤어스타일리스트로 진로를 바꾸었는데, 막상 이 직업이 결혼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커트하는 손이 조금씩 느려지면서 점점 이야기가 깊어진다.
'야아~~그만둬라~~ 헤어져~~' 이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꾹 참으면서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결혼한 누나들이 벌써 그 소리를 여러번 했단다.
녀석의 무거운 러브스토리를 듣고 집으로 오는 길은
조금 마음이 무거웠고
집에와서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다.
앞머리가
너무......
짧게 잘라져있는 것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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