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정보 : 21그램 (엔키노)
리버스(숀 펜)는 죽기전에 이렇게 독백한다.
"우리는 몇 번이나 사는가? 우리는 몇 번이나 죽는가? 사람이 죽으면 21그램이 줄어든다는데, 그 21그램으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잃는 것은 무엇인가?"
범죄자, 전과자의 삶을 신앙으로 극복하려 안간힘을 쓰는 가난한 노동자 조단(베네치오 델로토)은 좀도둑질을 하는 아이에게,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면 살 길을 열어주신다고 권면한다. 아이가 곧이 듣지 않자 자신의 새 트럭을 가리키며 무일푼이던 자신이 복권 당첨으로 그 트럭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며 그분 앞에 순종할 때 모든 삶을 이끌어주신다는 명백한 증거라 단언한다. 하지만 바로 그 '하나님이 주신 트럭'으로 한 평화로운 가정의 남편과 두 여자아이를 치어 죽이게 되고 모든 비극이 막을 올린다. 이제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 떠밀리듯 예배당으로 나아온 그의 푸석푸석한 얼굴 위에 일전 그가 그토록 권면하고자 했던 아이의 동정하는 시선이 내리꽂힌다.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 뜻대로.... 그저 열심히 잘 살아보려했던 그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하나님의 뜻, 삶을 주장하시고 돌아보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그 누구보다 기가 막혔던 것은 조단, 그가 아니었을까? 일용직 잡역부로 하루벌이하며 새까만 돌가루를 온통 얼굴에 뒤집어 쓴 그를 더욱 검어보이게 한 것은 삶에 대한 궁극의 절망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피를 토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외친 것은 마치 마지막 잎새에 자신의 생명을 무던히 점쳐보던 병든 소녀의 심정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일전 교회 동기들이 모였을 때 복무중이던 친구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비교적 늦은 입대를 했던 그는 편제에도 없던 군종병이 되어 참으로 원하던, 그리고 비교적 안온한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두고 우리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이라 평가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시간 부로 하나님이 저버린 크리스찬 군인들이 늘었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무엇이 하나님의 버림일까?
50명의 급우 중에 다섯 명의 기독교인이 있고 그 기독교인 학생들이 열성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공부해 반에서 수위를 차지했다면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라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50명의 급우 모두가 기독교인이고 그들 모두가 신실하다면 누구를 1등으로 세우고 누구를 그 꼴찌에 둘 것인가? 원하는 대학 학과의 정원에 넘치는 기독교인들이 지원했을 때 누구를 붙이고 누구를 떨어뜨릴 것인가? 이제 고전에 속하는 두 기독 선수팀의 경기는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이야기의 뒷면에 지나지 않는 이 문제들에서 그 결과만을 놓고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완성되었으며 누가 축복을 받고 또 누가 버림을 받았는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의 삶의 질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은 어떤 이에게는 건강한, 다른 어떤 이에게는 병든 심장을 주신다. 그가 얼마나 충실한 남편인지, 착한 아이들인지와는 무관하게 한 남자와 두 아이가 피투성이로 죽어가는 일을 용인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는 사내의 은혜로운 트럭으로 그 피투성이의 현장을 기꺼이 만들어내신다. 우리 신앙의 환상과 몇 백 광년 떨어져 있는 이 모습들의 과정과 접점에서 이건 하나님의 뜻이고 저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논하는 내 모습은 너무나 가볍고도 가볍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한 아내와 원치 않았음에도 그 모든 것을 빼앗는 역을 맡은 가난한 노동자의 말 없는 눈빛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21그램으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21그램으로 우리가 잃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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