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를 찾아서
뽑기와 달고나가 각광받고 있다. 뽑기와 달고나 셋트가 제작되어 절찬리에 판매중이며 검색엔진에 잡히는 쇼핑몰만 해도 이미 십수개에 달한다. 불량식품 단속이라는 미명하에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던 옛시절 추억의 군것질거리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불량 식품의 기준이 무엇인가? 소위 '량(良)식품'인 하드를 먹고 배을 앓았던 적은 많아도 '불량(不良)식품'인 뽑기나 달고나를 먹었다고 아팠던 일은 없었다. 더욱이 뽑기와 달고나는 어린이들이 직접 해먹을 수 있는 먹거리로서, 자라나는 동심들에게 DIY능력과 Frontier정신을 함양해줌은 물론 장차 사회구성원으로서 원만한 적응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립심을 배양해 준다. 뿐만 아니라 '에비~ 손대면 큰일난다'라고 하여 일방적인 불가촉 대상이었던 '불(火)'을 능숙히 다룰 수 있게 되어 '물질', '연소' 등의 고등교과과정을 이수하기 위한 초석을 닦는다는 데에도 그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설탕에 소다를 배합할 때 발생하는 신묘한 현상은 자연과학 분야에 대한 흥미를 고취시키기에 충분하며(그런 의미에서 '뽑기'를 불량식품으로 세뇌당한 어린이들이 성장한 오늘날, 이공계 기피현상이 두드러지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리고 뒤에서 다루겠지만 뽑기와 달고나 만드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사회성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규범가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안타까운 현실은 뽑기와 달고나의 원조에 대한 일반인들의 잘못된 이해이다. 오늘 이시간을 통해 역사가 전설이 되고 전설이 신화가 되어버린 전후사정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았으면 한다.
우리가 흔히 뽑기라고 알고 있는 먹거리는 실상은 '쪽자'에서 유래된 것이다. 혹자는 '쪽자'가 부산 경남 일원에서 불렸던 '뽑기'의 또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뽑기세트'의 구성품 중 하나인 '국자'는 '국자'라 부르기 조차 민망할 정도로 급조한 티가 완연하며 어린이들의 수준있고 격조높은 먹거리였던 '쪽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보급형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자.)
쪽자란 '국자'보다 크기가 다른, '작은 국자'를 의미한다. '쪽배', '쪽방' 등도 같은 어근을 취하는 단어이다.('쪽팔리다'할때의 '쪽'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쪽자 초창기, 커피 감도 조절용으로 나온 막대모양의 봉지설탕을 주원료로 사용하였는데(현재는 각설탕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그 분량이 이 쪽자의 크기에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또한 10세 미만의 코흘리개들이 파지하기에도 부담없을 정도의 중량이었기에 쪽자가 애용되었다. 이때 '쪽자로 해먹는다'는 것이 표현의 간소화로 '쪽자'가 된 것이다.
반면 '뽑기(일부 지방에서는 '떼기')'는 그 단어의 의미 자체가 심히 불량스러운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뽑기의 탄생 배경이 무엇인가? 학교 앞에 좌판을 차리고 DIY정신을 훼손시키며 양산된 쪽자를 얇게 눌러 편 후, 각종 모양을 내어 판매하던 것이 그 시작이다. 어린아이들이 모양을 따라 잘 갉아먹으면 또 하나를 준다는 상업적인 목적이 바탕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홈을 일부러 매우 얕게 만듦으로써 아이들이 도저히 모양을 만들지 못하고 그만 뚝! 부러지게 해, 수많은 동심에 상처를 남겼고, '잘하면 하나가 공짜'라는 사행심마저 조장하였다. 이런 순수치 못한 변종이 '쪽자'의 이름을 밀어내고 추억의 먹거리를 자처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리고 달고나 역시 똑바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쪽자는 설탕에 소다를 반응시켜 만드는 것이지 결코 달고나 같은 포도당 덩어리와는 견줄 바가 안된다. 달고나는 쪽자와 종목부터가 다른 것이다. 거기다, 쪽자 기술의 핵심 중 하나인 '고형화'라는 공정 자체가 불가능한 달고나를 어찌 쪽자의 반열로 다룰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후진언론 및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뽑기 혹은 달고나'라는 고증없는 어휘를 남발하여 이런 뿌리를 찾는 노력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
** 쪽자를 만들어 보자
자, 그러면 원조 쪽자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 보자.
1) 기본적인 재료는 다음과 같다.
- 쪽자
- 나무젓가락(알루미늄 젓가락은 쪽자의 정신을 떨어뜨린다.)
- 소다(동네 수퍼에 가면 500원 안팎이다.)
- 설탕 1큰술
2) 설탕을 쪽자에 담아 약한 불로 녹인다.
3) 쪽자를 위아래로 들어 불조절을 하며 잘 저어준다.
4) 설탕이 완전히 녹으면 아래와 같이 된다.
5) 녹은 설탕이 묻어있는 젓가락으로 소다를 '콕' 찍어 넣는다. 이때 묻어나는 소다양이 딱 정량이다. 좀더 쓴맛을 원한다면 한 번 더 찍어 넣어도 좋다.
6)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7) 부풀어 오른 쪽자의 모습
8) 적당히 부풀어 오르면 타기전에 불을 끄고 수냉시킨다.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자.(물이 들어가는지를 보면 허접 쪽자유저인지 쉽게 알 수 있다.)
9) 쪽자가 적당히 식었으면 공랭을 시킨다. 수냉은 내용물까지 굳히진 못한다. 공랭을 통해 완전 고형화를 도모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과학적인가! (내동생이 바쁜 와중에서도 모델이 되어 주었다.)
10)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여 이 모든 과정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냉동실 이용모습)
11) 식는 동안에 파라도 다듬으면 어머니께서 몹시 기뻐하실 것이다.
12) 완전히 굳었음을 확인하고 다시 약한 불위에 올린다. 이해 내용물은 냉각된 상태이기 때문에 쪽자의 접촉면만 살짝 녹게 된다.
13) 이때를 놓치지 말고 힘차게 밀어올린다.(이 부분이 쪽자기술의 핵심이다. 진정한 내공을 가진 유저들은 이 과정에 탁월하다. 과거, 초보들은 이 과정만을 숙련자에게 부탁하기도 했었다.)
14) 먹기 좋게 담아낸다. 파슬리나 얇게 썬 오렌지조각으로 데코를 하면 더욱 좋다.
15) 사용한 쪽자는 중탕으로 설탕을 녹여낸다. 과거, 쪽자 유저들은 자신이 사용한 쪽자를 중탕으로 청소/소독함으로써 다음 유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이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은 가슴 뭉클하기까지 하다.
** 결론
뽑기나 달고나 같은 순수치 못하고 저급한 이름이 더 이상 쪽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같은 사실을 널리 알려 쪽자의 진정한 의미와 참정신을 되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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