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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정상회담, 그 이면의 이야기  
 리디  posted at 2003-02-08 01:07:24
3955 hits  1 comments
 http://www.reedyfox.com NeWin reedyfox is level 39  llllllllll 
 퍼머링크 : http://reedyfox.com/island.php/column_etc/2  [복사]
** 들어가기 전에
    단어를 선택하는 것도 이젠 일이다. '들어가기 전에'라니.. 한자를 모르는 것이 어휘 선택을 얼마나 제한하는지. 뭐 그 덕분에 순수 한글로 된 단어들을 만들어내곤 하지만... 힘든 건 사실이다. 고로 티스처럼 어려운 단어는 사용 안, 아니 못한다는 말이니 내 글은 좀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그래 니 잘났다. -_-;)

    어제 몇 개월만에 CCC 예배에 참석했다. 아직 기말고사가 안 끝난 학생들이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체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주일엔 미군들과 예배를 드리고, 화요일엔 신우회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왔지만, 얼마만에 제대로 찬양을 하고 기도를 했는지 많이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록 얼굴은 몰라도 같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되는 것 같았다.


** 이 글을 싣게된 계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남북 정상회담이 얼마 전에 끝났다. (내가 느끼기엔 방송만 떠들썩했던 것 같던데..) TV를 보며 눈물 찡해지는 감동은 없었지만, 확실히 통일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피해 의식이랄까? 이젠 대남 방송도 그쳤다고 하던데 뭔가 꿍꿍이속이 있을 것만 같은 의심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아마도 그 동안 앞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 뒤통수를 치던 그들이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6. 25도 그런 식으로 발생한 것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던 중에 이 글을 접하게 되었다. 철저하게 보이기 위한 그들의 이번 모습 뒤편에서는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있음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표면만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글을 옮겨 놓는다.


일시: 2000년 2월10일 12시 정각
장소: 함경북도 무산시 장마당
방법: 장마당의 상점들을 모두 문을 닫게 하고 전 주민이 다 나와서 목격하도록 미리 알림.
처형당하는 이유를 남녀 당원 두 사람이 나와서 연극 식으로 해설하고 당과 조국을 배신하면 이렇게 처형당한다고 인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줌.
하반신은 고문으로 이미 일어설 수가 없이 만신창이가 된 사람을 말뚝에 새끼줄로 목과 가슴 그리고 허리를 묶음.
처형당하는 사람의 눈은 헝겊으로 가려졌고 부서진 다리로는 상체를 버틸 수가 없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음.
사격수들에게 조준을 명하는 장교가
"발사준비!"
할 때 사형을 기다리던 리영희 성도는
"예수를 믿으시오!" "주여!"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순간
"발사!"
하는 소리에 더 이상 리영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저격수의 총성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3명의 저격수가 머리에 4발 가슴에 4발 배에 4발을 쏘아서 온몸에 살점이 터지고 심장에서 터진 피는 구경 군들에게까지 튀었고 땅은 순교자의 피로 검붉게 물들었다.
시체는 순식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됨(일반사회사범들은 3발씩을 쏨)



    위의 글은 복음을 전하다 처형당하는 장면을 같은 동료 전도 인이 옆에서 지켜보고 생생하게 전한 보고중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북쪽 땅에는 또 한 사람의 순교자를 내었습니다.

    순교한 리영희(이영희)성도는 97년 가을에 굶주림을 견디다 못하여 두만강을 건너 우리 지하처소교회로 들어온 탈북자였습니다. 그는 보기 드물게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요 성분도 좋은 당원 이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 숙청 당해서 남편과 함께 아오지 탄광의 노동자로 전락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들 부부를 받아들일 때에는 남편은 복막염으로 사경을 헤 메일 때였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치료했고 먹이고 입히며 돌보았습니다. 또 위성방송을 통해서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게 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돌봐주는 인정에 그저 감사할 뿐이더니 차츰 가치관이 바꿔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상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우리는 지금 까지 속아 살아왔습니다." 라고 말한 뒤에는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성장하는 속도는 대단히 빨랐습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탈북자 생활에서도 밤새워 성경을 읽고 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3개월 정도를 우리와 같이 지낸 그들 부부는 남편의 질병이 우선해지자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싸 보내면서 성경책을 함께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다음해(98년) 봄에 왔을 때에는 믿음이 많이 성장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리영희는 친정동생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면서 전도도 했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병세는 그 전처럼 다시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또 다시 그들은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본격적인 성경공부와 전도의 방법을 배웠고 주의 일군으로 양육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명감으로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 여름철에 리영희는 쌀 대신 달러를(북한에서도 미화나 중국 위엔 화는 교환해 쓰는 방법이 있음)가지고 갔고 의약품과 특수 제작된 소형성경을 운반하기 시작했습니다. 98년부터 99년 말까지 리영희는 수차에 걸쳐 이일을 반복했고 그 남편은 건강관계로 집안을 돌보는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담대했습니다.
    그러던 중 금년(2000년) 1월 말경 함경북도 무산에서 체포되어 2주간의 모진 고문 끝에 처형당한 것입니다. 처형당하기 전에 하반신은 고문으로 이미 마비가 되었고 많은 출혈로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고문하는 보위부원들에게
    "예수를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이 악질 반동 예수쟁이 죽어봐라"하며 채찍과 몽둥이는 리영희성도의 몸을 파고들었고 그는 신음 때신 "주여!"를 외쳤습니다.
    초죽음이 되도록 처참한 고문을 당하고도 우리 선교 캠프나 선교사들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함으로 아직까지 우리는 이 일들을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리영희는 장렬한 한 사람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 님들!
    지금 북한에서는 도처에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99년 한 해만해도 400여명을 공개처형 했는데 그 중의 3분의 1은 기독교인으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 도처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난 55년 동안 북한의 죄악을 씻어 내려면 누군가 순교의 피를 흘려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 선교사들도 순교의 피를 흘려야할 준비를 해야할 것이라고... 우리는 단순히 배고프고 헐벗은 탈북자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를 주로 영접케 했고 사명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지금도 햇빛이 들지 않는 땅굴 속에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죽기를 결심하고 기도하며 순교의 때를 기다리는 제2 제3의 리영희가 양육되고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북한 땅에 수십 개의 지하교회를 만들었고 계속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북한 선교를 멀리서만 바라볼 때가 아닙니다. 더욱이 일하는 종들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봐서는 안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합심하고 합력하고 또 기도하고 후원해야만 할 때입니다. 주님이 가장 관심 하시는 일이 어떤 일이고, 기뻐하시는 일이 어떤 일인지를 우리는 항상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랑의 손길과 기도와 후원으로 이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몰려오는 탈북자 수는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저희는 힘의 한계를 느낍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 우리와 함께 동참할 일군을 보내주소서!"
    " 이 일에 후원할 동역 자들을 붙여주소서!"
    " 기도로 우리에게 힘을 실어줄 동지들을 만나게 해주소서!"
    저희들은 순교를 당하는 날 까지 이 일을 할 것이며, 이 일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은 또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기도와 후원을 보내주신 사랑하는 동역자 형제 자매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두만강변에서 가조선교사로 부터




**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실을 지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막연한 감정의 물컹함과 슬픔을 느끼며 이 글을 먼저 올리게 되었다. 선교에 대한 뚜렷한 열정도 개념도 없는 나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뻔뻔하게 이 글을 쓴다. 이렇게 글을 쓰면 후에 내 글에 책임을 져야하니 이 글이 나로 하여금 딴 소리를 못하게 할 테니까.. 일종의 다짐이랄까?

    어제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전철에서 선배가 나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통일을 준비하고 있니? 난 십년 안에 통일이 될 것 같구나.."
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국인으로, 그리고 크리스챤으로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못한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나를 많고 많은 나라 중 이 곳에 지금 있게 하심에는 분명 나에게 원하시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솔직히 아직도 먼일처럼 느껴지기 쉽겠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가까워진 통일을 느끼며 더불어 준비되어져야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20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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