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을 되돌아 보면 어른들은 정말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부모님이 나를 데리고 시내에 다녀오실 때나 멀리 유원지라도 갔다올 때면 어떻게 그 길을 다 알고 버스를 타는지, 기차시간을 맞추고 타는 곳을 찾아가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지금은 어른들이 대단한 능력을 가져서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아이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을 그들은 볼 줄 알고, 무엇을 참고해야 하는지 무엇을 따라가야 하는지를 아는 경험의 축적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던 아이에게 그들은 몹시도 커 보였다.
무언가가 커보인다는 경험은 누구나 가져본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닐 때 세상의 전부 같던 학교 운동장은 다 커서 찾아보면 왜 그리도 자그마한지. 우리가 작다고 느끼는 분량만큼 어린시절의 우리는 그것들을 참으로 크게 느꼈던 것이다. 비단 유년에만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회에서 소속이 청년부로 바뀌었다. 청년부는 1년차부터 5년차까지 있었는데 최고년차인 5년차 형누나 들은 막내인 우리들보다 겨우 네 살 많은 데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중에 회장과 부회장이 있었고 총무와 회계를 맡았으며 모든 행사와 활동에 진두 배치되어 역동적으로 모임을 이끌어나갔다. 그들의 진행과 연설은 힘이 있었으며 강력한 호소력으로 듣는이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사소한 분쟁에 개입하여 헝클어진 가슴을 고운 말로 다독일 때면 그 어느 상담자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할 감동이 있었다. 정말 그들은 모르는 것이 없어보였다. 하지 못하는 것이 없어보였다.
이윽고 수년이 지나 우리가 그들의 자리에 올랐을 때 당혹스러움은 엄청났다. 나는 바뀐 게 하나도 없는데 수년 전 우리들의 초롱초롱 잔뜩 기대하는 눈망울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이제 우리를 쳐다보는 후배들이 있었다. 두려움과 긴장..... 연간계획표를 앞에 놓고 과연 우리가 이것들을 할 수 있을까 묻고 되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완벽해 보였던, 모르는 것이 없고 불가능한 것이 없어보였던 우리의 선배들도 수년전 우리 앞에 똑같은 심정으로 서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블로그 페어를 마친 소회를 밝힌
이지 님의 글
을 읽고 그,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몇몇 이들이 무언가 대단하거나 완벽한 이들이 아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상 2명이 블로그 페어를 치뤄낸 건 기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 것이 이 행사다. 가보지 않은 우리야 코엑스나 여의도 굼벵이관을 떠올리며 블로그 페어도 '그 비슷한 무엇'으로 나른하게 넘겨버릴 수 있겠지만, 말을 안해서 그렇지
- 이지 님 표현대로 '구차하고 서글퍼서' - 그들에게는 두려움과 긴장이 끊일 틈이 없었던 순간이었을 게다. 보여주는 이와 보는 이의 차이는 없었다. 다만, 블로그에 대한 열정만으로 그 모든 것을 기획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떠맡은 이들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그러므로 때늦은 감이 있지만, 블로그 페어가 끝난 지금에서 우리가 마음에 남겨야 할 건더기가 있다면, 대회의 완성도에 대한 면밀하고도 냉정한 분석보다는, 모든 것에 앞서 또 한 명의 블로거에 지나지 않는 평범한 그들과 평범한 그들이 이뤄낸 평범하지 않는 결실에 대해 감사하고 격려하는 마음이 아닐까. 적어도
예단과 억측으로 엉뚱한 논쟁만을 촉발시키는 것은 행사를 위해서도 사람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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