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고시원은 방음이 안된다. 원룸형 말고 일반 고시원 말이다. 때문에 방안에서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거나 친구들과 떠들고 논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물론 그럴 만한 공간도 안되지만서도). 이런 상황을 입주한 학생들도 잘 알기에 서로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조심하는 편이다.
326호가 내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한 건 특단의 조치를 결심하기 2주전부터였다. 알람시계가 끊이질 않는 거였다. 아침 6시에 울리기 시작한 요란한 시계 종소리는 한 시간을 꼬박 채우고서야 잦아들었다. 알람만 켜둔채 사람이 없었던 게다. 우려하던 대로 저녁 6시가 되자 한 나절 잘 쉬고 난 시계가 다시 혼자 난리를 쳤다. 결국 관리실에 고하고나서야 조용해졌다.
평화는 이틀을 넘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밤 11시였다. 젊은 사람이 정신을 어디다 놓고 다니는지 모를 일이다. 역시 관리실에 말해 알람을 껐다. 여기까지는 건전한 일반인의 상식에 근거하여 충분히 인내할 수 있는 정도였다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원래대로 숨기기다음날 오전 11시에 시계는 다시 울렸다.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 인간은 시계를 켜두려 들렀다 다시 나갔단 말인가! 해도 너무 하지 않나. 가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A4 종이에 몇 자 휘갈겨서 창문 사이로 던져 넣었다.
"끄고 다닐 자신 없으면 알람시계 쓰지를 마!"
326호에게 저런 신사적인 경고가 통하리라고 믿은 건 내 오산이었다. 이틀 뒤 새벽 3시에 다시 시계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피가 거꾸로 쏟아지는 듯 했다. 그 밤에 옷을 둘러입고 관리실까지 내려가 문을 두드렸지만 응답이 없었다. 시계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 시간을 버틸 순 없었다. 몇 가지 도구를 사용해 326호 문을 땄다(고시원 문 정도는 쉽게 열리는 편이다). 불을 켜자 침대위에 놓인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너였냐."
그놈의 알람시계를 개박살 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으나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티를 내면 동기야 어떻든 굉장히 복잡한 상황에 이를 수 있으므로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대신 시계를 집어들어 침대옆 바닥에 내팽개쳤다. 건전지가 튕겨나가고 알람 소리가 뚝 끊겼다. "넌 그냥 혼자 떨어진거다. 알았냐?"
그 알람시계의 놀라운 내구성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건 나의 실수였다. 사흘 뒤 저녁 6시에 그 지긋지긋한 알람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나에게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설교할 자 누가 있으랴. 많은 생각이 필요치 않았다. 당장에 문방구로 달려가 5천원짜리 파이롯트 잉크를 한 병 샀다. 종이 껍데기는 고시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버렸다. 고시원에 돌아와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326호 문을 땄고 그 놈의 침대위에 정갈히 펼쳐져 있는 이불위에 한 방울도 남김없이 골고루 뿌려주었다. 잉크병은 손수건으로 말끔히 닦아 지문을 없앤 뒤 보란 듯이 알람시계 앞에 갖다 놓았다. 나오면서 방문 손잡이의 지문을 지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326호에서 알람시계가 울린 기억이 없다. 내 권고대로 알람시계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개과천선하여 제대로 끄고 다니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고시원을 떠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어쨌든 상식이 안 통하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효과적이라는 교훈은 얻었다.
상식을 지켜라. 내가 아무리 울트라 초특급 내성적 소심쟁이라 할지라도 상식을 지키지 않는 놈들을 보면 눈이 뒤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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