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컴퓨터 키보드에 키스킨을 입히지 않습니다. 키감이 둔탁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치 고무장갑을 끼고 여자친구 머리칼을 쓰다듬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말이죠. 하지만 겪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키스킨을 입히지 않으면 먼지가 얼마나 쌓이는지 왼쪽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감당 못할 더러움을 직면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면봉에 알콜을 묻혀 닦는 시늉도 해보았습니다. 품은 품대로 들고 제대로 닦이지도 않더군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키보드를
원래대로 숨기기
글자 그대로 키보드를 빱니다. 기계식 키보드에는 적용할 수 없으며 시중에 가장 흔한 멤브레인 방식의 키보드를 가진 분만 이 방법을 시도해 보실 수 있습니다. 멤브레인 키보드의 상판과 하판을 분리합니다. 키보드 뒷면에 있는 볼트 몇 개만 빼면 쉽게 분리가 됩니다. 그러면 그 사이에 말랑말랑한 고무 껍질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멤브레인입니다. 그 안에는 더러워질 일이 없으므로 입으로 훅훅 불어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문제는 상판이죠.
키보드 상판과 퐁퐁, 수세미를 들고 화장실로 갑시다. 철수세미는 안됩니다. 키보드 영구됩니다. 널찍한 대야나 욕조에 퐁퐁을 풀고 샤워기를 사용, 키보드를 씼어줍니다. 사실 수세미로 문지를 것도 없습니다. 샤워기 정도의 물발이면 왠만한 먼지나 오물은 다 씻겨내려가거든요. 설사 문지른다 하더라도 살살 아기 피부 만져주듯이 해야지 때미는 것 모양 박박 문질렀다가는 글씨가 다 지워질 수도 있습니다.
1~2분이면 다 된 겁니다. 한 번 헹궈주고
'털어 주면' 됩니다. 요게 포인트입니다. 털어주는것! 말리거나 닦아낼 필요 없습니다. 귀찮아 죽겠는데 어느 세월에 말립니까? 그냥 털어주는 걸로 족합니다. 키보드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털어주는 겁니다. 이해가 안되신다고요? 다음 자세 되겠습니다.
키보드를 잡을때는 키가 위쪽으로 가게 합니다. 물기를 털어내는 것은 하판과 결합되었을 때 안에 들어가는 부분입니다. 우리의 손가락이 닿는 키 부분은 물기가 남든 말든 별 문제가 안됩니다. 아랫쪽을 집중적으로 털어줘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또 집착하면서 털면 안됩니다. 줄줄 흐르지 않을 정도로만 털어주면 됩니다. 왜냐.... 멤브레인은 고무, 즉 방수라 이겁니다. 흐르지만 않으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털자마자 바로 하판과 결합해서 재조립하십시오. 물기가 걱정되신다구요? 염려 붙들어매십시오. 노 프라블럼입니다. 조립한 다음 바로 사용해도 끄덕 없습니다. 지혼자서 알아서 마릅니다. 젖은 나시티를 입고 돌아다니면 알아서 마르는 원리되겠습니다. 왼쪽 사진을 보십시오. 털자마자 바로 결합한 모습입니다. 깨끗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글이 이 키보드로 치고 있습니다. 문제가 없다니깐요. 아, 키보드 치실 때 물기가 손에 묻겠군요. 그럴땐 마른 수건으로 키를 한 번 스윽 닦아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키보드가 생산될때는 키와 키 상판이 마찰되는 부분에 약간의 윤활유가 뭍혀져서 나옵니다. 엔터나 쉬프트 키에는 아예 그리스가 발라져서 나오죠. 키보드를 계속 퐁퐁으로 빨다보면 윤활유와 그리스가 씻겨나가 버립니다. 그 결과, 키가 점점 뻑뻑해져서 타이핑이 괴로워지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방법이 있냐구요? 물론 방법이 있습니다. 모든 금속메커닉의 동반자, WD40이 있기 때문입니다!
WD40은 방청/윤활 작용을 하는 저렴한 스프레이 제품입니다. 편의점이나 할인점에서 쉽게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3~4천원 합니다. 이 넘을 키보드에 뿌려주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키보드 상판을 손에 든 상태에서 아래쪽 면에 뿌려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뿌릴 때도 직빵으로 뿌리는 것이 아니라 10도 정도의 각도를 유지한 채 뿌려야 합니다. 왜일까요?
상판을 뜯어서 관찰해 보십시오. 키를 누르고 뗄 때마다 키 몸통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죠? 나왔을때 노출되는 그 부분에 WD40가 묻어야 제대로 된 윤활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 사진에서 보듯이 상판을 뒤집어 놓으면 키 몸통이 상판 안에 숨어버린 상태가 되므로 아무리 WD40을 뿌려도 그 부분에 묻지를 않습니다. 또 10도를 유지하며 뿌려야 하는 이유는 키 몸통에 나 있는 구멍 속으로 WD40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왼쪽 사진을 보세요. 키 몸통은 속이 비어 있습니다. 비어 있는 저 구멍 안으로는 절대 WD40이 들어가서는 안 되기에 정면이 아닌, 비스듬한 각도로 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거 좀 들어간다고 무슨 큰 일 나겠느냐고 물으신다면 직접 실험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저 안에 WD40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저 사진은 상판이 뒤집어진 상태니까 결합이 되면 구멍 안에 고여 있던 WD40이 다시 바깥으로 흘러나오게 되겠죠? 그때 가장 먼저 만나는 게 멤브레인 표면입니다. 바로 그때 WD40은 고무를 녹여버립니다. 강력한 녀석이죠? ^^;;;
위 그림을 보세요. 저 정도 각도가 좋습니다. 키 몸통의 옆면에 적당량이 묻혀지게 됩니다. 뿌리는 기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치이이이이이익~~ <- 이게 아닙니다.
칙..... 칙...... 칙..... <- 이렇게 자리를 바꿔가며 가볍게 끊어 뿌려줍니다.
한 쪽에 세 번 끊어 뿌렸으면 반대쪽으로도 해야겠죠? 그럼 끝입니다. 젖은 걸레를 들고 상판 안쪽면을 대충 훔쳐줍니다. 뿌리다가 뭉텅이로 뿌린 곳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기를 털어줄 때도 그랬듯이 WD40도 흐르는 부분이 없도록만 닦아주시면 됩니다.
자, 완성입니다. WD40을 뿌린 후 키감의 매끄러움은 아주 놀랄 정도죠. 그야말로 참기름 바른 대머리에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랍니다. 목욕재개하고 기름까지 친 키보드로 명랑한 PC생활 이룩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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