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 사건이 내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고 있다.
부산 영락공원 묘지에 6월 30일 오후 두시에 그의 시신이 담긴 관을 덮은 붉은 십자가와 새하얀 경찰의장대의 의장복 모습에서도, 이에 오열하는 유족들의 찡그린 얼굴에서도, 장례식에서의 하용조 목사의 설교("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 이라크에 간 것이 아니라 이라크를 사랑했기에 이라크에 선교를 위해 갔던 것"……. "무슨 일을 하든지 생명을 걸고 하라"……. "김선일군은 선교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언론과 정치와 생업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하며, 생명을 걸고 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와 가수 윤형주의 추모곡(영결식 중반에 윤형주는 그의 유해와 함께 돌아온 유품인 기타를 들고 '순교자의 노래'를 불렀다) 등으로 채워진 부산 사직 실내체육관에서의 기독 연합장에서도 온통 ‘무언가 알뜰하게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이다. 나만의 망상인가?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사건의 인지절차와 관련한 미군 당국의 석연치 않은 태도와, 우왕좌왕하는 한국정부의 행보와 죽음 이후의 유족들이 보여준 참으로 기이하고 모호한 발언들과, 폭발적으로 이 이슈에 반응하는 정치권과(여기에는 이 피살 사건을 ‘파병반대’를 주장하기 위한 논거로 사용하는 촛불집회의 평범한 시민과 발언자들을 모조리 포함한다. 이 말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모르는 바 아니나 그들 역시 여기서의 ‘정치권’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거두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이에게 맡기고 ‘장례식’이라는 하나의 에피소드만 뚫어져라 생각해 보도록 하자.
2004년 6월 30일 오전 10시 부산 사직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된 장례식은 ‘두란노 경배와 찬양단’의 찬송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덕천 제일교회 배춘식 목사님이 대표기도를 했고, 고인의 친구인 심성대씨가 쓴 추모시를 그의 약혼녀인 임보혜씨가 낭독한다. 허남식 부산시장이 이어서 추모사를 낭독하고 한기총 대표회장인 길자연 목사가 역시 추모사를("일찍이 선교사의 꿈을 갖고 황무지인 중동 지역의 복음에 단비를 적셔보겠다는 너른 포부를 지녔던 청년 김선일, 꿈을 펼치기도 전에 메마른 모래땅에 뜨거운 선혈 쏟고 말았다") 낭독했다. 그리고 반송 성서침례교회 이동수 목사가 고인의 약력소개를, 유가족 대표인 장진국 전도사가 ‘화해의 메시지’를("선일이를 천국으로 환송하는 이 자리에서, 선일이와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이 자리에서, 슬픔과 고통의 언덕을 넘어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합니다. 통곡하고 싶지만 기쁨으로 고백합니다. 이라크를 용서했습니다. 이라크를 사랑합니다.") 낭독하고, 예배의 형식에 따라 성경봉독, 설교, 찬송, 기도가 이어진다. 엄숙하고 침통한 분위기의 ‘기독교연합장’이다. 장례식의 풍경은 그러했다.
앞에서 나는 장례식의 여러 모습에서 ‘무언가’가 ‘소비’되고 있다고 했다. 소비되는 대상은 무엇이며, 소비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모두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소비되는 자는 죽은 자이며, 소비하는 자는 살아남은 자들이다. 장례식이 망자의 넋을 기리는 예배가 아니라 거대한 버라이어티 극(劇)처럼 생경하게 그려진 것은 이 때문이다. 무례하고 시니컬하다는 비난은 기꺼이 감수하겠다.
장례식에서의 고인은 철저한 순교자였다. 우리 모두가 고인이 얼마나 애타게 생을 갈구했으며 자신의 희망이 묵살될 것임을 예견하고 얼마나 처절하게 공포와 낙심에 몸부림쳤는지를 알고 있음에도, 보았음에도, 지금도 그 ‘화제의 동영상’이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이미 운명을 달리한 이의 절규를 내뿜고 있음에도, 원하면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아무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산 자들은 이야기한다. “그는 순교자였으며, 우리는 이라크를 사랑한다.” 이것은 ‘대언(代言)’인가? 내가 보기엔 ‘비진의표시(非眞意表示)’이다. 그리하여, 산 자들의 말은 ‘무효(無效)’라는 말로 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거짓’이다.
온누리 교회는 가나무역과의 관계에 대하여, 김선일씨와의 관계에 대하여 번지는 이야기에 대해 무척 억울할 것이다. 그들의 말(“김선일씨는 온누리 교회의 ‘성도’가 아니며, 온누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도 아니다.”)이 전적으로 사실이라고 신뢰해 보자. 그 와중에 장례식과 관련하여 이 교회는 식을 위한 방송장비를 포함한 여러 물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길과 진리,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장례식에서 설교를 한 분이 하용조 목사님이라는 것만 보아도 이 장례식을 위해 온누리교회가 말 그대로 헌신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젊은이의 죽음에 한 교회가 총동원되어 이렇게 헌신했다는 것은 칭송을 받아 마땅한 일일 지언정 비난은 가당치도 않을 것이다.
그래. 그 교회의 선의를 믿자. 석유자원의 획득과 군수물자의 소비를 위한 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미군의 물자 공급을 맡은 가나무역이라는 회사의 정체성과, 이 회사의 직원 11명 중 4명이 온누리 교회 신도였다는 것이며(온누리교회에서 발간하는<온누리신문> 편집장 장선철 장로는 청년 4명이 가나무역에 입사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확인되는 객관적 사실에 대한 거짓 증언은 어떤 목적에서 비롯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교회 측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온누리 교회만의 독창적 선교사 파송 시스템인 ACTS 29의 내용이며, 그것이 하필 이 심난한 전쟁의 가장 첨예한 와중에 작동하여 희생자의 코앞에서 알려졌다는 ‘시간적 접근성’이 주는 의혹은 모두 의혹일 뿐이라고 하자. 그럼에도 장례식을 주도한 온누리 교회 스태프들의 분주한 모습이 본래의 선행으로는 보이지 않고 이 행사를 가장 활발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주체로만 보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속 신도도, 소속 선교사도 아니었던 온누리 교회와 ‘전혀 무관’했던 김선일씨는 이라크에서 고통속에서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온누리 교회 신자’가 된 것 같은 이 앞뒤가 뒤바뀐 것 같은 감상은 또 다른 나만의 악의적인 망상인가.
달이 바뀐 7월. 장례식은 이미 끝났고 고인의 상처받은 육신은 고향의 땅으로 돌아와 묻혔다. 그러나 고인을 필요로 하는 곳들은 아직 그를 가만히 놓아두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고인의 영정은 방패가 되고, 구호가 되고, 유인물이 되고, 다짐이 되어 계속해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인쇄되고 있다. 장례식은 그 거대한 시작이었다. 소비는 이제부터인 것이다. 우리는 혹시 그를 기꺼이 소비할 준비가 된 수요자는 아닌가. 죽음과 의혹에 대한 이야기를 클릭하기 전에 이 불쾌한 질문을 받아주시길 감히 부탁드린다.
※글의 제목인 Death Eater는 조앤 K. 롤링의 소설 "Harry Potter"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즈카반 감옥의 간수 "디멘터(dementor)"를 부르는 다른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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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모름] 지하철 그녀의 시선](http://reedyfox.com/bbs/icon/member_image_box/1/subway1.jpg){kind=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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