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쓴적이 있지만,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경험중 하나가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이다. 일단, 미용실은 지나치게 밝고 여자가 너무 많다. 그리고 여자가 내 몸을 만진다;; 이거 정말 최악 아닌가? 게다가 샴푸실에서 목을 뒤로 제끼고 있는데, 이런 저런 질문을 받을 때는 곤혹스럽기도 하고.
내 담당인 분 이름이 유가희 선생님인데, 나중에 따로 헤어샵을 차리면 어울릴 만한 이름이다. 유가희 헤어샵. 멋지지 않은가? 의자에 앉으면 "어떻게 잘라드릴까요?"라고 묻는다. 그럴때마다 어떻게 대답해줘야할까 고민하다가 어느날부터 간편하면서도 명료한 주문방법을 찾았다. "2주전 머리로 만들어주세요."
오늘은 이분이랑 대화를 좀 많이 했다. 긴장해서 좀 버벅거리긴 했지만.
"보통 한달 조금 못되서 오시죠?"
"2주마다요."
"아- 그러잖아도 이분이 오실때가 됐는데..... 했었죠."
"......"
"손님 기억 못하는 줄 아셨죠?"
"네."
"^-^ 헤...."
"......"
"성격이 참 조용하신가 봐요."
"&*@(#^$(@......"
"(머리 자르다 말고 귀를 기울이며;;;) 네? 뭐라구요?"
"무슨 말을 해야될지 몰라요."
"^-^;;; 그냥....... 생각나는 것들 말하면 되죠."
"........."
"머리카락은 늘 이런 스타일이 좋으세요?"
"음...... 그러니까..... 에......;;;;"
"네. 말씀하세요."
"-_-;;; (삐질삐질;;;) 뭐라고 설명해야될지 몰라서 그냥 똑같이 자르는 거에요;;"
"하하..... 날씨 서늘하면 좀 기르시는 게 어떨까요? 어제 집에서 생각해봤는데, 손님은 머리카락을 조금 기르시는게 분위기에 맞을 것 같더라구요."
집에서 내 헤어스타일을? -ㅅ-;;;;
"음...... 선생님 보시기에 좋은대로 해주세요."
"그럼 앞으론 제가 알아서 잘 잘라드릴게요."
"네.... -.-;;;"
9시 출근조일땐 저녁 8시까지 일하고, 12시 출근조일땐 밤 11시까지 일하니까 시간을 잘 맞춰오라고 했다. 음..... 인제 미용실 갈때 걱정거리 하나 줄었다.
<<미해결 문제들>>
1. 유가희 선생님은 샴푸를 할때 별도로 머리 마사지를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오래 해주는데 심적으로 큰 부담이다. 손가락이 얼마나 아플까. 안해줘도 된다고 '언젠가는' 말 해줘야지.
2. 머리카락 다 자르고 나면 안경을 씌어준 다음에 '맘에 드세요?' 하고 묻는다. 그것 좀 안해줬으면 좋겠다고 '언젠가는' 말해야지.
덧. 지지난주에 머리카락 자를때, 첨부터 끝까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는데, 그게 정장 상의를 입은 유가희 선생님 옆구리 속살이 거울에 비쳤기 때문이란 건 아마 모르고 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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