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섬, 바닷가


베이비복스와 걸레	WRITE


리디 posted at 2004-08-11 02:06:49	3681 hits 1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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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네이버

1992년 한 여중생이 PC통신 상에서 상대방이 자신을 '걸레'라고 호칭하는 것에 충격을 받아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걸레'라는 단어의 뜻을 알지 못했던 나는, 베이비복스(이하 '베복')와 DJ DOC 이하늘의 다툼을 보면서 비로소 옛날의 그 사건을 떠올린다.

'걸레'와 '미아리복스'라는 발언은 기본적으로 그 의미가 닿아있다. '걸레'는 성관계가 잦고 그 대상이 매우 문란한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며, 특히 여성의 성기를 지칭해 은유하는 더러운 단어이다. 한편, 청량리 용주골 등과 함께 사창가의 대명사가 미아리임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고, 그만큼(=창녀만큼) 성관계가 문란한 댄스그룹이라는 비아냥이 섞인 것이 곧 '미아리복스'라는 별칭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여중생을 죽음의 길로 인도했던 그 잘난 PC통신인과 이하늘이 어떤 차이를 갖는가?

이즈음해서 늘 돌출하는 발언들은 뻔하다. 이른바 2PAC 이야기다. 베복이 그들의 추앙을 받는 2PAC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변명거리일 뿐이다. 조금만 추이를 들여다 보면 이하늘을 옹호하고 베복을 질시하는 이들의 말과 글, 그리고 그것들을 쏟아내는 뇌덩어리 속에는 투팩이니 뭐니 하는 낯선 외국인의 음악적 성과에 대한 진지한 고려보다는,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배설의 기쁨만으로 가득차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을 보라. 개같은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제 삶과 너무나 비교되는 그레이스의 아름다움과 친절함과 사려깊음의 괴리를 견뎌내질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퇴락함과 추악함의 책임을 그녀에게 돌려버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문란한 여자라고, 더러운 여자라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밤이면 저 자신도 모르게 그레이스의 침실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날이 밝으면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녀를 손가락질 하기 바쁘다.
저들을 보라. 베복이 성적코드를 상품화하여 부족한 음악적 소양을 가리기 급급하다고 말하지만, 그 성적코드를 소비하는 자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다. 그런 자신들의 간악함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자조 아니면 매도인데, 후자가 훨씬 용이하고 유쾌하므로 늘 선택되는 것은 상대를 '매도'하는 것이다. 베복의 가슴과 엉덩이를 보고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동시에 나와는 다른 저급한 종자를 가진 천한 것들이라 매도함으로써 가련한 제 존재의 정당성을 회복한다. 이게 본질이다.

비판의 정당성이니 뭐니 떠들지만 그 기저에는 이미 비판의 핵심이 증발해 있고 단지 외부로부터 바라보는 자들을 향한 전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명분만 남았다. 애시당초 미아리복스니 걸레니 하는 - 그들이 정말 걸레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단초 자체가 이하늘의 가치관과 그안에 자리잡은 불변의 마초성을 두말없이 증명해주고 있다. 여중생을 죽음의 길로 인도했던 그 잘난 PC통신인과 이하늘은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무슨 얼어죽을 차이를 갖는가?

***** 리디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 + 카테고리유지되었습니다 (2004-09-1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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