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닐곱 살짜리 대장금이가 훈육상궁의 명으로 밤새 물을 채운 항아리를 들고 마당에 서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제조상궁과 최상궁은 그 가혹함에 말을 잃고 만다. 왼쪽 스샷은 그때 최상궁의 표정을 담은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최상궁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슬램덩크라는 만화..... 다 아실텐데, 이 만화가 다른 만화와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가 '악역'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주인공이 강백호이고 그의 소속팀 북산(?)고교가 스토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만, 비록 상대팀이라 할지라도 '악의 축'으로 그려지는 경우는 결코 없다. 모두들 자신만의 사연과 삶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인간'인 것이다. 마음씨 고운 신데렐라와 흉악한 계모의 대결을 통해서야 비로소 안정감을 찾는 분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슬램덩크의 그 점이 굉장히 맘에 들었다.
대장금 초반부의 최상궁의 캐릭터가 그랬다. 그녀는 단지 자신에 대한 과한 자부심과 가문의 명예에 대한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이 있었던 건 사실이나, 그것이 그녀를 악녀로 만든 건 아니다. 그렇기에 (아직 그녀의 라이벌이 아니었던) 어린 장금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저리도 애처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지 않을까.... (사족이지만, 제조상궁 역시 집안의 세도에만 후광을 입어 자리를 차지한 망나니가 아니란 점도 무척 맘에 든다. 적어도 생각시 훈육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한 기품을 보여준다.)
그런데 중반부로 접어들 수록 다시금 예전 드라마의 도식적은 선악대결이 기승을 부리는 듯하여 몹시 안타깝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한상궁 마마의 죽음에 관하여는 제발 최상궁의 '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를 바랄 뿐......
덧. 어떻게 생각하면 장금이를 마냥 심성이 고와서 당하고 사는 게 아니라 단순히 푼수끼가 다분하고 한편으로 어린 시절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가책성 강박증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된 것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적어도 마냥 신데렐라는 아니란 얘기니까.
## 써놓고 보니 너무 기네. =_=;; 자게로 옮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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