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래도 나는 벌레에 관한 한 초능력에 가까운 민감함을 가진 듯 하다.
내가 누군가.. 잠 들면 천둥번개가 치고 굿을 해도 모른 채 시체처럼 자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내가 새벽녘에 벌레가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벌레가 힘들어하는(?) 소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뭔가 벌레가 불편해 하는 소리.. 그러니까 씩씩거린다고 해야하나 헉헉거린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소리였는데 아주 작게 한번 들렸다.
그러나 너무 깊은 잠 중에 있었던 데다가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아 곧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알람소리에 깨어 일어났을때 나는 그 희미한 어둠 속 어디선가 벌레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감지했다. 이번엔 소리가 아니라 움직임을 느낀 것이다.
불을 켜자 내가 아까 움직임을 감지한 그 자세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 돈벌레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냥 보아도 그 벌레는 어딘가 아파보였다.
바로 살충제를 가져와 뿌렸는데 내 경험상 그 정도가 뿌려졌을 땐 꽤 멀리 도망을 간 다음 심하게 지랄발광네굽질을 하다가 죽어야 하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그냥 맥없이 뻗어버렸다.
그러니까 내가 잠결에 들은 힘들어하는 소리를 내었던 것이 이 놈인게 확실하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쥐며느리, 바퀴벌레, 개미, 돈벌레 등등 여러 종류의 벌레들이 있었다.
(개미가 있으면 바퀴벌레가 없다던데 이상한 일이지만 개미와 바퀴벌레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 벌레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내가 아닌가.
내가 질식해 죽을 정도로 약을 쳐대어 3일만에 개미와 바퀴벌레는 아주 멸절을 해버리고 이후론 가끔 쥐며느리와 돈벌레가 보일 뿐이다.
그런데 그 즈음 하루는 자다가 벌레가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근데 이 놈의 벌레가 계속 돌아다니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결국 완전히 잠을 깨고 불을 켜 봤더니 글쎄 내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장판 위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불을 켰는데도 어슬렁거리는 것이였다. 방에는 벌레가 건드려서 소리가 날만한 어떤 것도 없었다.
내 무서운 살충제 난사에 겨우 살아남긴 했으나 기력이 쇠한 왕놈이 물을 찾아 헤메이다가 벌레에 관한 한 소머즈를 능가하는 내 청력을 자극한 것이다.
이 뿐 아니다. TV를 집중해 보고 있는 중에도 왠지 뭔가 움직임이 느껴져서 자세히 살펴보면 TV를 보고 있던 자리에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레가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많다.
그런 일련의 일들을 볼 때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 부터 그런 쪽으로 감각을 키워왔다면 나는 초능력자가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벌레와 대화하는 최초의 지구인이 되지 않았을까..
|
명 오늘 
명
PRINT Text
PRINT HTML
